안 수 길(논설위원, 소설가)

오늘이 계사년 끝이다. 자고나면 갑오년의 새 해가 어김없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사는 게 고달프고 ‘시절이 하 수상하니’ 새해 희망조차 ‘올동말동’, 기대 난망이다.

 철도노조파업이 3주 만에 철회됐다. 누적채무 18조원이 갈수록 늘어 가는데도, 국내 최고수준의 연봉을 받는 이들이, 그 적자를 메워주는 납세자와 산업의 발목을 잡고, ‘신이 내린 직장’에서 불변의 호사를 누리기 위해 정부의 공기업개선정책과 온 국민의 삶을 흔들었다.

 서울평화시장 봉제공장 근로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준수를 호소하며 분신했던 6,70년대와 다르게, 산업규모와 근로조건은 확연히 변화됐다. 하지만 아직도 그늘 속의 일부 근로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에 허덕이면서도 하소연할 기회조차 없다.

 그러나 세력화된 다수 근로자들은 사실상 근로현장의 갑으로 변신했다. 경영자의 고유권한까지 압박하는 건 물론, 노동문제를 넘어 사회 정치 분야에까지 영향력을 행사, 공권력조차 무시하는 위법을 자행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했다. 파업을 무기로 정당, 시민단체와 손잡고 기업을 흔들거나 정부를 흔들고 ‘황당 루머’를 살포, 민심왜곡으로 국민의 안녕까지 흔들어왔다. 정부가 큰일을 할 때마다, 이들이 벌이는 시위와 함께 살포되는 ‘황당 루머’는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 사회혼란에 막대한 재정손실과 사회적비용을 치르게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해 놓으면 굴러갈 자동차가 없는 고속도로에 졸부들이 첩이나 태우고 달리면서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부아나 지를 것이다. 포항제철 건설자금으로 들여 온 일본자본이 기술종속과 시장종속, 경제종속으로 이어져 마침내는 국가종속관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한`미 FTA협정이 조인되면 외국농산물에 농민은 압사하고 수입쇠고기는 온 국민을 광우병으로 죽게 할 것이다. 4대강사업은 대운하건설을 위한 꼼수요 토건업자만 살찌우는 막대한 예산낭비다. 철도공사 자회사설립은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며, 민영화 뒤에는 철도요금이나 전철요금이 수십 배 오르고, 빈번한 사고로 시민희생이 커질 것이다.

 ‘황당 루머’는 잘 각색 된 시나리오를 연출하듯, 붉은 머리띠와 살벌한 구호, 피켓과 촛불, 그리고 첨단 SNS를 통해 사실처럼 확산되면서 모든 걸 흔들었다. 정부의 정책추동력을 흔들고 국가경제를 흔들며 민심을 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뢰까지 흔들었다.

 고속도로는 24시간 붐비는 산업동맥이 됐고, 포항제철은 세계굴지의 제철기업과 비견하는 조강능력을 보유, 국내 연관 산업도약의 기반이 됐다. 4대강사업은 유역주민들의 가뭄과 홍수불안을 대폭 감소시킬 만큼 치수효과를 발휘하고, 광우병은 환자발생 기록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때 난리치던 ‘투사’들은 혼란의 책임엔 함구한 채, 절망버스를 타고 해군기지건설현장으로, 송전탑건설현장으로, 전장을 찾아 이동하면서 극렬한 전투(?)를 벌여 왔다.  

 철도노조는 파업 중, ‘황당 루머’로 여론을 분열시키면서 입으로는 ‘국민이익’을 사수한다 했지만, 어느 백치 경영자가 철도, 전철요금을 턱 없이 올려 망조를 자초하겠는가. 경쟁 없는 안일과 기득권 호사를 함께 누리겠다는 욕심을 호도하는 것이었다. 그간 불법파업을 옹호하던 정당과 시민단체의 처사는 과연 합당한 건가, 아니면 진영논리에 함몰된 건가. 민주당은 공기업개선이 과거 집권시절의 정책과제였음을 잊은 돌발성망각환자가 아니라면, 진작에 파업 철회를 권고하고 정부여당과의 조정에 나서야 했다. 민노총은 시위현장에 용병(傭兵)을 파견하는 단체가 아니라면, 불법파업에의 무조건 동조보다, 명분이 옳은 것인가를 냉철히 판단한 뒤에 행동결정을 했어야 노동운동의 신뢰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시 반정부여론을 확산시키고, 존재과시로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의도로 무조건 파업을 비호 동조한 거라면, 이는 국민여론이 역삼투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더 크다. 정부 여당도 법과 원칙을 지키되, 국민들에게 공기업개혁의 절실성을 먼저 설득하고 철도노조와 노동계, 야당의 요구 중 수용 가능한 부분이 뭔가를 찾아, 그들의 존재감을 살려줬어야 했다.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 일을 키운 건 양측 모두가 국민의 안녕을 외면한 관견(管見)의 소치였다.

 좁은 시각으로 당장의 소익에 집착한다면, 국민들의 고통만 커질 뿐이다. 공기업개혁은 피해서는 안 되는 절실한 과제다. 정부 여당은 그 속도와 수순조절에 지혜를 짜고, 개혁대상공기업 근로자들은 ‘철밥통’사수를 위해 정부를 흔들고, 민심이 흔들리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국회철도발전소위에 대한 역할기대와 함께, 내일 떠오르는 갑오년의 새 해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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