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2013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해마다 세밑이면 우리 선조들은 그간 찾아뵙지 못한 이웃 어른과 친지들에게 묵은 세배를 올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도 올해가 가기 전에 풀어야 할 해묵은 갈등이나 불편한 관계들이 많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간의 치열한 정쟁으로 미처 처리되지 못한 민생법안들이 수두룩하며 사회적인 대립은 물론 국제관계에서도 풀어야 할 과제가 아직도 산적해 있다.

  이렇게 앙금이 잔뜩 남은 채로 해가 저물어 가는데도 지난 1년 간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하겠다는 입장만 간접적으로 전해질 뿐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 앞에 나서는 경우를 찾기 어려웠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대부분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의 ‘모두발언’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입장, 북한의 도발 위협이나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생각, 기초연금 공약 수정에 대한 해명 등 굵직하고 중요한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모두 이런 식으로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뿐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12월 당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기자회견도 가진 적이 없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첫 해 15회, 노무현 대통령이 18회의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를 가진 것과 비교된다. 대통령이 직접 방송사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지난 3월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자 이를 비판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때뿐이었다.

  이러니 대통령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부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야당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조차 우려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청와대나 여권의 일부 인사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 당선 1주기인 지난 19일 청와대 출입기자들 앞에서 “원칙대로 가려고 하는데 불통이라 욕한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강변했다. 또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소통하는 스타일이 다르다며 “나름대로 열심히 소통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니 굉장히 억울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소통의 올바른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의사전달이나 의견 청취는 소통이 아니다. 소통은 말 그대로 모든 참여 당사자들이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소통이 잘 되고 있다고 주장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소통은 모든 당사자들이 공유하는 소통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나름대로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소통방식이 다르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정말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방식의 차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통방식을 바꾸든가 아니면 상대방이 바꾸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은 서로 생각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필요하다는 점이다. 서로 뜻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는 소통이 필요 없다. 이심전심(以心傳心)할 수 있는 관계에서야 구태여 무슨 말이나 글이 필요하겠는가.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생각이 충돌하기 때문에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방과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알기 위해서라도 소통이 필요하며, 상대방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무시할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서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행히도 새해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를 계기로 그간의 모든 묵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소통하는 정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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