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새해 첫날이 작은 아들 생일이다. 생일이라고 특별한 건 아니지만 오랜 시간 외국에서 지내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함께 모여 식사라도 하려고 서울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집에 오라고 했다.

 그래도 명색이 아들 생일인데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몇 가지 해 먹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워낙 요리에는 손방인데다가 그나마 식구 없이 남편과 둘이 사느라 사먹는 일이 많다보니 요즘은 그나마 할 줄 아는 메뉴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얼마 전 친구가 묵은지를 넣은 돼지 등갈비찜을 해 줘 먹어본 적이 있는데 맛이 참 깊고 인상적이었다.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에도 잘 맞았다. 그 일이 떠올라 등갈비찜을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하는 아들도 당연히 좋아하는 메뉴였다. 미역국도 정성껏 끓여 제대로 된 맛을 내 보겠다고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도 해 보았다.

 마트에 나가 장을 보고 와 요리를 시작하려니 애견 천사와 사랑이가 쪼르르 따라와 주방을 기웃거렸다. 그 녀석들은 내가 뭔가를 요리할 때면 곁을 떠나지 않고 빤히 쳐다보며 기다린다. 그들도 먹을 걸 준비하는지 아는 모양이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큰 결심 끝에 말티즈 두 마리를 집으로 데려와 키운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한 마리는 캐나다에 있는 큰 아들이 결혼식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며 사주었고 다른 한 마리는 두 달 뒤 작은 애가 한 마리 더 키우시라며 사준 것이다.

 한 마리일 때보다 두 마리를 키우다보니 강아지들끼리도 외롭지 않아 좋고 집안에도 훨씬 활기가 넘쳐난다. 사람을 잘 따르고 영리해 어지간한 사람과 있는 것 보다 훨씬 위안이 된다. 어쩌다 기분이 울적하다가도 그 녀석들이 재롱떠는 모습이나 자는 모습을 들여다 보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밝아지기도 한다. 개 키우는 일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사실임을 실감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점점 모든 일이 시큰둥해지고 재미있는 일이 줄다보니 웃을 일이 거의 없고 기분이 가라앉게 마련인데 그 녀석들과 장난치고 놀다보면 마치 유치원생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유년시절 장난꾸러기가 된 듯도 하다. 두 아들이 강아지 두 마리를 사주고 간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거듭 생각하게 된다.

 나에 비해 훨씬 더 조용하고 소극적인 남편 또한 두 녀석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빼앗겼는지 밖에서 남는 음식을 싸가지고 와 주기도하고 쉬는 날이면 종일 품고 살다시피 한다. 강아지들 물병이나 밥그릇도 정성껏 닦아주고 위생에도 그렇게 신경을 쓸 수가 없다. 남편에게도 천사와 사랑이는 큰 기쁨이다.

 큰 녀석인 천사는 충견이라 내가 원고를 쓸 때면 책상 밑에 가만히 앉아 나를 지키고 내가 세수를 하고 욕실에서 나오면 기다렸다가 화장대를 향해 쪼르르 달려간다. 내가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곁을 지키며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면 방문 앞에서 기다리다 반색을 하며 아침 인사를 한다. 그럴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마도 그런 맛에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키우는가 보다.

  작은 녀석인 사랑이는 천사보다는 사람을 덜 따르는 편이라 다소 뚜하지만 체격이 천사 반밖에 되지 않아 장난감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쩌다 품에 안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장난감 같다며 호들갑을 떤다. 입도 짧고 겁이 많아 아직 산책도 거의 못해보았지만 그래도 생후 일년이 지나고 나니 밖에서 돌아오면 언니인 천사와 길길이 뛰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 때면 두 녀석들과 만남의 의식을 치를 일로 일로 마음이 설렌다. 그럴 때 참 행복하다 .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를 맞아 올 한 해도 내게 밝고 기쁜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고통과 슬픔이 찾아와도 의연히 다스릴 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거칠고 소란스런 탐욕을 거두고 고요한 마음으로 청빈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삶이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임을 잊지 말고 변함없이 측은지심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마음과 해맑은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더 노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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