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전하는 희망메시지 - 차인홍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 부교수

한국 장애인 최초의 미국 음대 교수
소아마비, 가난에도 가슴 속에는 늘 희망이
장학재단 만들어 장애학생 후원할 계획

어느 순간부터인가 ‘희망’이 고루해졌습니다. ‘꿈을 꾸라’는 말은 차고도 넘쳐 어쩐지 한물 지난 종말론자들의 구호처럼 보입니다. 나는 더 이상 꿈꿀 수 없다고. 꿈꾸는 것조차 내게는 사치라고. 달아나는 2013년을 붙잡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기, 이 사람이 희망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대전 출신의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음악인이 된 차인홍(56·사진)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 부교수. 그가 검푸른 절망의 바다에서 낚아 올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 퍼덕대는 희망의 기저에는 처절한 아픔을 겪어낸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진정성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타오르는 새해, 살아 숨 쉬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분명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존재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되어서까지 제 형편과 사정은 긍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늘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과 극심한 가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사실들은 저를 주눅 들게 했지요. 그런데 제게는 항상 ‘이것은 끝이 아니야. 분명 다른 세상이 있을 거야’하는 막연한 희망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차인홍 교수는 한국 장애인 최초의 미국 음대 교수다. 24살까지의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던 그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무수한 역경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에게는 걸음마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이 지날 무렵부터 벽을 짚고 일어서 걸음을 떼려 했지만 쓰러지기 일쑤였다. 소아마비 판정과 함께 유년은 암울해졌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해야 할 두 돌짜리 아기가 맞닥뜨린 것은 평생 걸을 수 없다는 깊은 절망이었다. 방바닥을 뒹굴며 분노를 내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 곁에는 병으로 직장을 잃고 몸져누운 아버지와 6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늘 피곤에 찌들었던 어머니가 있었다. 결국 초등학교에 입학조차 하지 못한 채 대전의 장애인시설인 성세재활원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곳 원생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하던 바이올리니스트 강민자씨와의 만남은 삶의 여정을 달라지게 했다. 차 교수는 서울대 음대 출신인 강씨의 배려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됐고, 지도를 받은 지 1년 만에 충남도 주최 음악 콩쿠르에 나가 1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음악인의 길은 멀었다. 중학교 졸업장이 없어 고등학교에 진학조차 하지 못한 그에게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강씨의 대학 후배인 고영일씨가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고씨는 현악4중주단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차 교수를 포함, 재활원 출신 학생들로 구성된 베네스다 4중주단이 결성됐다. 1바이올린을 맡은 그는 주로 연탄광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연습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렸다. 베네스다 4중주단이 막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미국 신시내티대가 그들의 입학을 허락하고 학비까지 면제해주겠다고 알려온 것. 이후 신시내티대에서 학사, 뉴욕시립대 브루클린대학에서 석사,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때까지 가슴 한 구석에는 늘 희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까닭 모를 그 희망은 질긴 생명력을 갖고 마음속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8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 부교수와 이 대학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된다. 희망이 피운 꽃이었다.

●“터널은 끝이 있고, 그 끝은 환합니다.”
방황의 시간도 있었다. 애초부터 남과 같지 않은 몸이었고,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삶이었다. 청춘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푸르고 싱그러운 시절, 그에게 드리운 것은 깊고 짙은 어둠의 그림자였다. 자살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난 적도 여러 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력하는 하루하루는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삶을 살아내는 자신이 뻔뻔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의 손길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날아갈 듯 늘 아슬아슬했던 꿈의 끈을 놓지 않았다. 차 교수는 “주변 좋은 분들의 사랑과 도움이 나를 계속 일으켜 세웠다”며 “내 삶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내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 순간도 누군가의 은혜가 없이는 안전할 수 없고 건강할 수도 없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찾는 단어입니다.”
힘든 순간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미국 유학 생활 중, 아내는 만삭인 상태로 가발가게에서 일하고, 재봉질을 하며 차 교수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했다. 부잣집 장녀로 곱게 자란 아내가 자신 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에 매일 속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학의 교수 채용 심사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대전시립교향악단 악장으로 활동 중 동료들의 오해로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제가 젊었을 땐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여학생들에게 나름 인기도 많았어요. (웃음) 걸어 다녔으면 180㎝가 넘을 키인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속상한 일들이지요. 그러나 세상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습니다. 9살 때 부모와 가족을 떠나 재활원에 맡겨질 때부터 제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던 것 같거든요. 그 때부터 이미 세상에서 차별 당하고 업신여김 받는 일쯤은 각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과 고난의 시간은 그를 단단히 다져주었고 가족 간의 사랑을 더욱 깊게 했다. 차 교수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만 살 수 없고, 누구든지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다”며 “터널은 언젠가는 끝이 있고, 그 끝은 환하다는 사실이 어려움을 이겨내게 한다”고 밝혔다.
“고난,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을 마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태어나서부터 풍족하기 만한 삶을 살다 죽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한 사람입니다. 고난을 경험한 사람만이 삶에 감사할 수 있고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겸손할 수 있습니다.”

●“피하려 들지 말고 고통과 마주하세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필하모닉 바이올린 수석·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교향악단 객원 지휘자 역임, 해외유공동포 대통령상 수상, 현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 부교수 겸 대학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의 이력들은 화려하다.
그것은 화려한 이력의 뒷면, 기록되지 않은 지난한 세월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현재 자신을 이룬 것은 마음속에 늘 잠재하고 있던 꿈과 희망 덕분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마주해 보세요. 나보다 더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세요. 또 나 자신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세요.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형편과 사정을 가지고 태어나고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잘날 수는 없습니다. 형편과 상황에 따라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저는 모든 것은 제게 주어진 삶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려고 합니다.”
차 교수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영혼의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살며 배우는 것 중 하나는 어떤 사람이든지 서로 존중하고 각자가 가진 장점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고 있지요.”
그는 시종일관 겸손했다.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는 자잘한 주름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얼굴에 배어있었다. 어릴 적부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오면서 정작 자신은 남을 배려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기에 의식적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되돌리려 한다. 장학재단을 만들어 장애를 가진 국내·외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할 계획이다. 최근 펴낸 자서전 ‘휠체어는 나의 날개’의 모든 인세와 차 교수에 대한 후원금은 이 장학재단에 전액 기부된다. 매년 방학이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장애인을 위한 자선모금 음악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에게는 하나의 사명처럼 느껴질 정도로 애착이 가는 일이다.
“책과 저의 연주, 삶에 대해 감동하고 위로 받았다는 말을 여러 분들에게 들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행복해집니다. 모든 사람들의 일생은 행복하고 좋은 날들과 고통스럽고 힘든 날들이 반씩 모여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제 전반부 인생이 험난하고 힘겨웠다면 이제 후반부의 삶은 이렇게 행복하게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 고난은 오히려 힘이 되었습니다.”
 


차인홍 교수 약력
▷1958년 대전 출생 ▷미국 신시내티대 졸업 ▷미국 뉴욕시립대 석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 박사 ▷대전시립교향악단 악장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필하모닉 바이올린 수석 ▷해외유공동포 대통령상 수상 ▷현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 부교수 겸 대학 오케스트라 지휘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