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논설위원, 소설가)


 새 정권이 들어서면, 유난히 위세를 떨치는 단어들이 있다. 일소, 척결, 엄단, 근절, 발본색원, 개선, 개혁, 혁신..... 앞의 몇 단어는 살벌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지만, 뒤의 세 단어는 뭔가 기대를 갖게 하는 일면이 있다. 이런 단어들이 왜 하필 정권 교체기에 난무하는가? 과거에 잘 못 된 것 들을 싹 갈아엎고 새 출발 하겠다는 의욕의 표출이요 각오를 다지는 것일 테니, 그 살벌한, 혹은 기대를 갖게 하는 단어들이 제구실만 한다면 굳이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남발되는 단어들이 일회성 구호에 그치고, 시간이 갈수록 자극강도가 떨어지면서 제구실을 못한다는 데 있다. 일소 ,척결, 근절 돼야할 모순이나 비리 부정은 ‘관행’이라는 포장지에 싸이거나 은밀한 장막 뒤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개선 개혁 혁신할 방안은 정당간 혹은 정부부처간의 갈등이나, 이익단체의 저항에 부딪혀 몸살을 앓다가 흐지부지 되기가 십중팔구다. 진작에 없어졌을 비리 부정 모순이 여전히 건재(?)하는 건 바로 그 탓이다.

 박근혜정부 들어선 후, 첨가 된 단어가 소통(疏通)이다. 개선 개혁 혁신을 가로막는 갈등과 저항, 몸살의 이유가, 여당은 야당의 발목잡기 탓이라 하고, 야당은 여야와 정부 간의 소통부재 탓이라 한다. 소통의 본디 뜻은 ‘막힘없이 서로 통하는 것’이지만, 이게 안 돼서 매사에 ‘자물쇠’가 걸리는 불통인 건 확실한데, 누구 책임이냐는 건 풀 길 없는 ‘밀당’ 게임이다. 

 ‘자물쇠’는 잠금장치다. 지역에 따라 자물통, 쇠통 등의 방언이 있지만, 영호남지역 방언은 ‘소통’이다. 전래과정에서 자물쇠-자물통-쇠통-소통으로 변화됐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하나, 정확한 생성경위는 알 길이 없다. 영호남방언 ‘소통’이, 한자표기 ‘疏通’과 동음이의(同音異義)로 묘한 의미대척을 이루는 게 재미있긴 하지만, 요즘 들어 갑자기 사용빈도가 높아진 ‘소통’이, 영호남방언의 ‘소통’이 된 것 아닌가 싶어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막힘없이 서로 통해야할 ‘소통(疏通)’이 역설적으로 꽉 잠긴 소통(쇠통)이 된 듯싶기 때문이다.  

 도대체 소통(疏通)이 뭐 길래 그 야단들인가? 물이 순리대로 흐르자면 수문(水門)을 열거나  물길 가로막는 장애물을 걷어내야 한다. 일이 물 흐르듯 술술 풀리게 하려면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한다. 자존심, 고집, 이기심, 명분 따위의 걸림돌, ‘소통(쇠통)’을 치워야 소통(疏通)이 되고 마음이 통한다. 물길 막는 장애물 제거가 불가능하다면 곁도랑이라도 내야 하듯, 때로는 법이나 원칙을 바꿔야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서로 소통해야할 양방이 입 보다 귀를 먼저 열고, 할 말 쏟아놓기 전에 듣는 말 먼저 챙겨야 한다. 

 ‘얼굴만 붉힌 회담’, ‘정답은 없었다.’ 지난 해 9월 16일, 대통령과 새누리, 민주 양당대표의 3자회담 후에 국내의 각종 보도매체가 찍어낸 활자들이다. ‘소통’을 위해 열린 회담에서 소통은커녕, 성과 없이 얼굴만 붉혔다는 얘기이니, 서로의 마음은 자물통을 걸어 잠근 채, 몸만 마주 앉았던 셈이고, 귀는 막은 채 입만 가지고 만났던 셈이다. 그러고 헤어진 뒤에는 서로를 ‘불통’이라 비난하며, 여야가 사안마다 튕기고 버티기가 지금 이 시각까지다.

 


 지난 1월 6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중에 소통을 강조한 후, 각료들은 산하기관장회의나 현장시찰에 열심이고, 청와대에선 여러 사람 불러서 밥 먹는 자리를 마련, 소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지만, 야당의 반응은 시큰둥이다. 기관장 불러놓고 일방설득에 엄포(?) 놓거나, 끼리끼리 모여 단합대회(?)하는 게 무슨 소통이냐는 것이다. 국민들도 그 많은 회의보다 장관이 관련사업 현장 근로자들과 흉중을 털어놓거나, 청와대회식에 대통령과 야당대표가 국정동반자로 마주앉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으니, ‘그게 무슨 소통이냐’는 야당의 시큰둥한 반응에도 일리가 있음직하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사안 잠시 접어놓고, 근로자대표들과 관계 장관, 대통령과 야당대표가 아늑한 자리에서 식사 한 끼 같이하며 새해덕담과 위로를 주고받았더라면, 닫힌 마음들이 좀 열리지 않았을까?

 정부 여당은, 사익에만 집착하거나 정책실패를 바라는 불순인물, 불순단체에는 철퇴를 가하되, ‘지지 않을 선거에 졌다’며 정권탈환의 꿈을 이루지 못해 한(恨)이 맺혔을 민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삼아 손을 내밀고, 민주당은 집권시절의 애로를 생각하고 국정의 순탄한 흐름을 위해 협력의 손을 내밀면, 그게 바로 소통의 시작이고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을 이루는 상생정치요 민생정치다. 먼저 손을 내미는 너그러운 쪽이 차기정부 선택권을 가진 국민의 마음을 사는 일인데, 그 너그러움이 자신의 입지나 명분 보다 민생을 우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과연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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