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극동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지난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를 들 수 있다. 한동안 침체됐던 MBC 예능을 부활시킨 두 프로그램의 공통적인 인기비결은 방송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는 점이다. ‘아빠! 어디가?’는 연예인 아빠들이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좌충우돌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정작 주목을 받은 것은 아빠들이 아니라 방송이 처음인 자녀들이었다. 연예인들의 실제 군대 체험을 다룬 ‘진짜 사나이’ 역시 출연진들의 군대 적응기 못지않게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반 병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예능 프로그램에 일반인이 등장하여 예상치 못한 재미를 주는 것은 낯선 일은 아니다. ‘1박2일’(KBS2)은 국내 곳곳을 여행하는 프로그램다보니 현지에서 만난 일반인이 등장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런닝맨’(SBS)에서는 미션 수행에 도움을 주거나 아예 함께 참여하면서 제3의 출연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요즘 일반인들의 언행은 시청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하면서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다만 전에는 일반인의 등장이 우연이었지만 최근에는 아예 프로그램의 주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덕을 많이 본 MBC는 새해 들어 일반인의 비중을 한층 더 높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금요일 밤 10시에 편성된 ‘사남일녀’가 그것이다. 연예인들의 시골생활 체험이라는 기본 컨셉은 이미 ‘패밀리가 떴다’(SBS)나 ‘청춘불패’(KBS) 같은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던 것이라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차별점은 제목 그대로 친남매로 설정된 5명의 연예인들이 일반인이 사는 시골집을 찾아가 4박5일 동안 진짜 자식처럼 지내고 온다는 설정이다. 일반인이 출연 연예인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사실 방송에 익숙치 않은 일반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제작진 입장에서도 위험 부담이 크다. 연예인들이야 재미를 위해서라면 제작진의 다소 과한 요구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캐릭터가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고 자칫하면 무미건조한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되어 재미도 감동도 놓칠 수 있다. 그저 방송에 잘 들어맞는 캐릭터를 가진 일반인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험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사남일녀’는 출연진의 면면부터 얼핏 이해되지 않는 조합이었다. 개그맨 김구라와 배우 김민종, 김재원, 이하늬에 농구선수 출신 서장훈이 다섯 남매로 등장한다. 활동영역도 다르고 평소 별다른 친분이 없던 이들이 과연 남매처럼 보일지, 더구나 대부분이 예능 초보이고 김구라 조차 야외 버라이어티 경험은 거의 없다. 과연 이들이 일반인들과 잘 어울려 프로그램을 살릴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강원도 인제 읍내의 허름한 시골다방에 어색하게 모여 앉은 이들의 모습에 제작진도 한숨이 나왔을 듯싶다.

 


  일반인과 예능의 만남에서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생전 처음 만나는 부모님(?) 앞에서 “아빠! 저희 왔어요.”하며 넙죽 절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강원도 산자락의 매서운 추위에도 멀리서 찾아온 자식들 먹이려 손수 준비한 시골밥상과, 밥값을 하겠다며 서툴지만 이것저것 시키지도 않은 집안일을 하려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방송을 위해 억지로 꾸민 것 같지 않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명절날 모처럼 고향집을 찾은 형제들 같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친형제라도 모처럼 만나면 처음에는 솔직히 어색하다. 그렇지만 가족이기에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며 어색함을 풀어나가는 보통 사람들의 고향 나들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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