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 소설가)

 큰 물가 외딴집에 옥강이가 산다. 반대편 뚝 떨어진 언덕배기 외딴집엔 기성이가 산다. 그런데도 14살 동갑내기인 이들 둘은 하루도 안 만나는 날이 없다. 동네우물가에 있는 기와집재실에서 날마다 재실샌님께 한문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 서당에 학동이 이들  둘뿐인 것은 같은 또래 애들은 모두 면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까닭이다. 그래서 하루는 옥강네 집과 가장 가깝게 살고 있는 아홉 살 난 명정이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왜 옥강이형은 학교에 안 들어갔지?” “여느 애들과 달리 몸이 저러니 아무래도….” 옥강인 곱사등이다. 등뼈가 고부라져 큰 혹과 같은 뼈가 등에 불쑥 나와 있다. 뼈의 발육장애로 말미암은 것이니 또래들보다 허약한 데다 꼽추로 인한 외견상의 불리한 조건 땜에 스스로가 남들과 어울리길 꺼려하고 또 또래들도 자연스럽게 대해주질 않으니 학교 같은 집단사회엔 더구나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실제로 옥강인 외톨이었다. 부모가 있고 형도 있으나 모두가 농사일에 매달리니 늘 외딴집에 혼자 있고, 집 밖에 나가서 유일하게 노는 일이란  삽짝 앞에 흐르는 큰 물가에서 물장난을 하거나 냇가 모래밭에서 조약돌을 줍기도 하면서 개미며 쇠똥벌레 같은 것들의 바쁜 생활의 모습들을 신기한 표정으로 관찰하는 일이다. 이 옥강이가 기성이와 정식으로 사귀게 되는 건 재실샌님께 한문을 배우면서다. 기성인 멀쩡한 아이다. 옥강이보다 목은 하나 더 있어 보이는 키에 여느 애들과 견주어도 더 훤칠하고 건강하다. 둘은 단박에 친해져 백이숙제 방불케 하는 형제애로 발전하는데, 한학공부에 매진하는 이들의 글 읽는 소리는 우물가 아낙들의 귀를 통해 온 동네로 퍼져 나갔다. 또한 훈장샌님네 남새밭을 이들 둘이 맡아 가꾸어 주는가 하면 서당료로 이레만큼씩 바치는 땔나무 한 짐씩은 정해진 날을 넘기는 일이 없고 그럴 때마다 옥강이의 나뭇짐까지 기성이가 해준다는 숨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네집집의 칭송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기성이가 왜 학교에 가지 않고 재실서당에 다니는 걸까. 집안이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동생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가. 그래서 명정이가 또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왜 기성이형은 학교에 안 들어갔어?” “그러게 말이다. 아마 그래서 그랬는지….” 기성이가 토산불이라는 것이다. 한방에서 아랫배와 고환에 탈이 생겨 붓고 아픈 병을 산증(疝症)이라 하거니와 이로 말미암아 한 쪽이 커진 불알을 ‘토산불알’이라 하고 이 토산불알을 가진 사람을 ‘토산불이’라 한다는 것이다. 명정인 엄마 따라 장 구경을 갔을 때 이를 직접 본 일이 있다. 난전을 벌이고 있는 아줌마 옆에 발가벗은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아랫도리가 이상했다. 한 쪽의 불알이 유난히 크게 매달려 있는 거였다. 기이해서 한참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옆의 그 아줌마가, 무슨 구경거리라고 보느냐며 역정을 내는 바람에 찔끔 물러섰었다. 이로 볼진대 이 기성이 역시 본인이나 부모로선 남들과 어울리기엔 아무래도 불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기성이가 어느 장날 황당한 일을 당했다며 엉엉 우는 거였다. 장에서 기웃기웃 난전 구경을 하고 돌아섰을 뿐인데 느닷없이 한 여인네가 쫓아와 훔친 물건을  빨리 내 놓으라 해서  영문을 몰라 하자 아랫도리 바지 속에 감춘 것 다 안다며 불룩한 기성이의 아랫도리를 가리키더란다. 이에 바지를 내려 보일 수도 없어 난처한 얼굴로 서 있으려니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도둑놈 취급을 하는데 그래도 부끄러움을 참으며 그대로 서 있자 창창한 젊은 놈이 어디 잘 되나 봐라 며 포악을 퍼부어 억울함만 잔뜩 안고 왔다는 거다. 이에 동네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우르르 장으로 몰려가 그 여인네를 몰아세웠다.

 이 옥강이와 기성이가 장성해서 장가를 들었다. 오히려 같은 또래들보다 이른 결혼이었다. 동네경사로 모두 축복해 주었다. 애들도 쑥쑥 낳아 시집장가 보냈다. 그러면서도 둘의 형제애는 한결같았다. 특히 기성이 쪽이 옥강이를 극진히 보살폈다. 그러다 옥강이가 먼저 환갑 전에 기성이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랬는데도 기성인 옥강이의 산소를 극진히 돌보고 남아 있는 식구들의 뒷배까지도 보아준다.

 이제 팔십을 바라보는 기성어른께 명정영감이 묻는다.

 “친형제 사이라도 그리 못하잖어유?” “서당시절, 옥강이 모친께서, ‘우리 옥강이 잘 부탁한다.’ 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인 약속을 이행하고 있을 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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