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준 <청양군 목면 부면장>


부부가 대화를 안 한다는 기사를 봤다. 나이가 들수록 대화하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내용이었다. 연령대에 따라 점점 말수가 적어지더니 50~60대는 말 안하는 부부가 반수를 넘어섰다. 부부는 왜 말이 없어지는 것일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상대에 대한 내공이 쌓여서 일까.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관계가 됐다는 뜻일까.

 

돌이켜 보면 남녀관계는 말이 없어져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처음 만나는 청춘남녀를 보라. 얼마나 말이 많은가.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쉴 새 없이 이야기 한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화제를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고도 나중에는 헤어지는 게 아쉽다. 사랑에 빠지면 다 그렇다.

 

헤어지는 게 아쉬우면 다음 순서는 함께 사는 거다. 결혼을 한다. 연애시절은 장점만 보였지만 결혼하면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콩깍지가 벗겨진다. 더러 속았다는 표현을 쓰지만 그건 상대가 속인 게 아니다. 상대를 하느님 다음 서열로 만들어 놓은 것은 이쪽 선택이기 때문이다. 

 

단점이 보이면 이번에는 그걸 고치려 한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 쉽게 바뀌나. 싸운다. 싸우다가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포기한다. 포기한다 해서 쿨하게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휴화산처럼 갈등이 잠재된 상태로 그냥 지나간다.

 

포기하고 나면 대화가 뜸해진다. 말 수가 적어지면 오해가 쌓이는 법이다. 오해는 벽을 만든다. 관계에 벽이 생겼다는 건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말을 하면 일방통행이 된다. 생물학 적인 귀는 열려있지만 상대방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기 말만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의 불통은 점점 깊어 간다. 

 

불통의 벽은 노력없이 극복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관심만 깊어 질 뿐이다. 남녀가 부부라는 사슬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삶을 낭비하고 산다.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인데 불행한 일이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을까. 다시 돌아보자. 연애할 때는 단점이 안보였다. 결혼하고 나서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관계가 변한 것이다. 상대방만 변한 게 아니다. 이쪽도 변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살아있는 것 들은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데 관계라고 예외일리 없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죽은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관계는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관계다. 좋았던 옛날만 생각하면 답이 없다. 벗어나야 한다. 변화를 인정해야 관계가 풀린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출발해야 길이 보인다.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바둑과 닮았다. 반상은 늘 흑과 백의 변화가 무쌍한 전쟁터다. 살아있다. 돌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한 점의 돌이 쌓여 바둑을 완성하듯 일상이 모여서 삶을 이룬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온다. 가을이 가면 또 겨울이 오지 않던가. 좋았던 시절은 지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그리워한다 해도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좋은 추억이 한 때 당신 삶을 빛나게 하는 요석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그 역할을 다한 폐석일 뿐이다. 폐석은 버려야 한다.

 

인생을 긴 안목에서 넓게 보라. 바둑판을 벗어나야 국면이 보인다. 내 돌의 위치만 생각하면 그게 전부인 것처럼 보여도 조금만 벗어나면 아주 작은 부분 중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 붙잡혀 있으면 안 된다. 변화에 적응하여 스스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머물지 마라. 새로운 국면마다 변화를 즐겨라. 한번 밖에 없는 삶을 방치하지 마라.

 

이제 돌을 놓아야 할 시간이다. 당신 차례다. 가라. 길은 어디나 있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남들 사는 거 따라하지 말고 당신만의 길을 가라. 당신이 생각하고 당신 손으로 둬야 당신 바둑이다. 훈수대로 두면 동네바둑이 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 같은 건 없다. 결정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면 된다. 남은 것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삶은 계가가 끝날 때까지 승패를 알 수 없는 바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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