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가끔 인간 삶의 궤적이 호숫가의 오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울 차가워진 기온으로 호수가 바깥쪽부터 서서히 중심을 향하여 얼게 되는데, 오리는 점점 조여 오는 바닥 얼음을 피해 열심히 헤엄을 치지만 결국 얼음에 갇혀 죽음을 맞게 된다.

 우리 건강도 젊은 시절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을 물줄기처럼 무한해 보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해 종착역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일생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녀 간 사랑이 그렇고 육체적 생명이 그렇다. 무릇 생명체는 무한성을 꿈꾸며 유한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변의 진리지만, 그러한 단순진리조차 딴 세계의 일 인양 잊어버리기 일쑤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한해를 시작하는 년 초에는 누구나 새로운 다짐과 결심으로 가슴이 부푼다. 모두들 생기에 넘쳐 얼굴이 빛난다. 단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쁨에 찬 시간을 보내며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축제를 준비하고, 산으로 바다로 해맞이를 떠나거나 별스런 행운을 기대해 복권을 사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고통과 절망을 경험한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올해가 아닌 내년엔 다를 것이라는 희망어린 기대가 있어서다.

 희랍신화에 나오는 시지푸스의 비극은 산꼭대기에서 굴러 내려오는 바위덩이를 혼신의 힘을 다해 밀어 올리고 다시 굴러 떨어지기를 반복한다는데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절망의 과정에서조차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되풀이 하는 것은, 설사 숙명처럼 얽혀져있는 엄혹한 현실일지라도 그 불가능의 끝에 다다른 바늘 끝만 한 희망 때문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 지난해와 다른 새해, 우리가 늘 꿈꾸는 것들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장미 빛 새날이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이것이 우리 인간만이 지니는 위대함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관계란 혼자가 아닌 복수나 집단이 상호간 이념, 취미 등과같이 육체적 정신적 이해관계로 맺어진 자발적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불문율 같은 그들만의 규칙이 있게 마련인데, 급변하는 문명의 발달은  세대 간 계층 간 의식까지 변화시키며 많은 간극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그 편차가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진 상황이다.

 일예로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다름에 대한 사고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과 다른 논리는 양립이 불가능한 절대 악으로 규정짓는 적개심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감정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며 행동까지 영향을 미친다. 적개심은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부정이 습관화되어 긍정의 사유가 병립할 수 없도록 편협해지는 상태로서, 상대를 인정한다는 사실자체가 자신의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타인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명백한 사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에도 이를 수용하거나 용납하지 못한다. 절대적 배타성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탓에 새로운 타협이나 관용이 존재하지 못하고 오직 내 주장만이 목적이자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의 다양성이 철저히 무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개인주의의 만연과 물질만능사회가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급속한 정보기술의 발달은 상호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고유의 전통적 인간관계까지 변화시켰다. 집단적 조직문화가 점차 사라져가고 사회성이 실종된 개인만이 존재한다. 이제 문명의 이기가 끼치는 해악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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