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마치 벼랑 끝으로 밀려가는 듯한 형국이다. 새해 들어서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선은커녕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양국관계 개선 필요성이나 가능성 등에 대한 얘기도 별로 들리지 않는다.
지금처럼 과거사 문제가 발목을 붙잡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가까운 장래에 반전의 계기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국관계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려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몹시 우려스럽다.
지난 25일 일본 공영방송 회장이 했다는 위안부 관련 발언은 그런 점에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언론보도로는 모미이 가쓰토 NHK 신임 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전쟁을 했던 어떤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또 NHK가 독도 등 영토 문제에 대한 일본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공영방송 회장이 아베 정권과 코드를 맞춘 듯한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다고 해서 자질 시비 속에 파문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일본 내각에서도 언론사 최고책임자로서 해서는 안 될 ‘실언’이라며 사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그런 부적절한 발언이 이미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한일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을 일이다.
NHK 회장 발언 파문은 어찌 보면 한일관계를 수렁 속으로 밀어 넣는 일련의 돌발 악재 중 하나일 뿐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옹호 발언이나,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나온 도발적인 표현은 과연 일본 정부에 한일관계 개선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22일 다보스 포럼에서 각국 언론사 간부들과 만나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옹호했다고 한다.
일본 외무상이 지난 24일 국회 외교부문 연설에서 독도를 두고 `고유 영토'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렇다.
이대로 가면 한일관계는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복원력을 아예 상실하고 말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큰일 아닌가.
일본이 과거사의 상처를 헤집는 자극적인 언행을 더는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진취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곧 한일 양국관계, 나아가서는 한·중·일 3국 관계 개선의 출발점이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진정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일본은 지금 한국은 물론 중국과도 심각한 대립 구도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태를 더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소한의 대화 통로라도 열어야 하고, 그러려면 무엇보다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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