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스프린터로 활약하며 한국 선수 최초로 6번째 올림픽에 출전한 이규혁 선수를 이제는 볼수 없게 됐다.
동·하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여섯 번째 올림픽을 치른 이규혁은 13일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레이스를 마치고 자신의 화려했던 선수 생활까지 함께 마무리했다.
그는 경기를 마치고 "오늘이 선수로서 마지막 경주였다. 다음 올림픽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1991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20년 넘게 태극마크를 지켜 온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태극마크를 다는 동안 그는 대부분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뽐냈다. 그는 24년 간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차례 정상에 올랐고,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통산 14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렇듯 화려한 성적을 남겼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가 말했듯이 '올림픽 메달이 없는 선수'였다. 그는 올림픽도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를 시작으로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까지 다섯 대회 연속 출전한 데 이어 이번에 소치에서 여섯 번째 무대를 맞았다. 동·하계를 통틀어 여섯 차례나 올림픽에 나선 선수는 한국에서 이규혁이 유일하다. 올해 36세인 그는 이번 대회 500m에서 18위, 1,000m에서 21위(1분10초049)에 그쳤으나 혼신의 힘을 다한 역주로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빙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시절부터 이규혁은 한국이 '강국'으로 대접받도록 이끈 '일등 공신'이다.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이어진 '스피드 코리아'의 시대는 이규혁의 활약을 발판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거머쥐지 못한 채 올림픽을 떠나게 됐지만, 그의 업적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더 인정했다. 이번 대회 남자 500m 정상에 오른 미헐 뮐더르(네덜란드)는 올림픽 공식 프로필 중 자신의 '영웅'을 묻는 난에 이규혁의 이름을 올렸다. 어떤 국제 대회를 가도 다른 나라 선수들로부터 먼저 인사와 격려를 받는 모습은 이규혁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올림픽에서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을 보여줬다.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끝까지 유쾌하게 전력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많은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는 이규혁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것이다.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대한민국은 많은 메달을 획득해 명실상부한 동계스포츠 강국임을 과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종목에서 고른 경기력을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앞으로 4년 뒤 평창 올림픽에서는 좀 더 다양한 종목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이규혁의 올림픽 도전은 끝났지만, 우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도전하는 젊은 선수들과 함께 레이스를 힘차게 질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올림픽 무대와 작별한 그는 많은 이의 마음속에 영원한 '국가대표 스케이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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