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 교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면 흔히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이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신분제사회의 전통이다.

 귀족이라는 신분이 사라진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노블레스는 사회지도층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자본이 사회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블레스 즉, 사회지도층은 누구일까? 필자는 자본가집단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재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재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에 걸맞는 존재들인가?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겠지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재벌은 대부분 노블레스를 흉내내려고 멋지게 외양을 꾸미고 교양있는 척 하지만 행태를 보면 거리가 멀다. 한국의 재벌들은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를 갖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불법상속과 탈세 등 파렴치한 행위와 황급한 기부(?)로 점철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본인들이 가진 부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지 않고 공공성에 입각하여 실천한 사람들이 있어 소개해 본다(아래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대부분 예종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에서 인용하였다).

 잘 아는 것처럼 유일한은 재력가의 자제로 일제 강점기에 불과 열 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가 고학생에서 경영자로 성장하였고 고국에 돌아와 민족기업을 일으키고는 항일투쟁을 위한 특수요원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다시 기업을 키워 사회에 환원하고 육영사업에도 힘쓰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참된 기업인이었으며 기부문화의 선구자로 근대와 현대를 잇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정문술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다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 퇴직 당하였다. 45세의 나이에 반도체분야에 뛰어들어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후속사업실패로 자살까지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좌절하기 않고 재기하여 결국 국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나눔으로 눈을 돌려 재산의 사회환원을 실행에 옮긴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이다.

 유일한과 정문술은 출신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자녀들에게 나눔을 가르치는 가정교육을 몸소 실천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는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도 부자들이 많다. 때론 운이 좋아서 혹은 보상의 결과로 거부가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개인의 능력과 피와 땀이 뒤섞여 얻어낸 결과라고 본다. 이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도 존경받는 부자들이 나와야 한다. 나와 내 가족 만 잘 살기 위해서 재산을 모으고 이를 세습하는 전통을 뛰어 넘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양식있는 부자들이 지역에서도 탄생했으면 좋겠다. 기존의 부자들이 살아왔던 전통으로는 구두쇠나 수전노라는 별칭만 얻지 지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권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현재 우리사회는 부의 양극화가 만연하고 이에 따른 분열과 갈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공동체정신을 회복하여 우리 지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지역이 정신문화가 살아있는 도시, 시대정신에 앞서가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존경받는 부자, 권위를 갖춘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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