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논설위원, 소설가)

 소치 동계올림픽이 지난 23일 밤, 화려한 폐막식과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은 금메달3, 은메달3, 동메달2, 종합 13위로, 종합 5위(금6, 은6, 동메달2)를 기록했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성과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우리의 어린 선수들은 잘 싸웠다.

 대회 초반,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경위에 대한 새삼스런 논란과 일부종목의 경기 중 불운으로 선수단 분위기가 다소 침체되는 듯했으나, 선수들은 이를 잘 극복하고 혼신의 힘을 다 해 닦은 기량을 발휘했다. 김연아의 2연패 기대가 무산되고 은메달에 그쳤음에도 세계의 관중과 언론은 그를 여전한 피겨의 여왕으로 인정하고 있다.

 러시아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은 개최국 덕을 본 ’홈 쿠킹 (엄마가 차려 준 밥상)‘이라는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의 비유 외에도, 세계의 여러 언론과 전문가들이 불공정한 심판결과에  불만과 의혹을 제기 했지만, 정작 불공정의 피해 당사자인 김연아는 의연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여야 한다.’ ‘하늘이 저보다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금메달을 줬다고 생각하자.’ ‘(나에게)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

 대회를 마친 후, 김연아가 토로한 심경의 일단이다. 스포츠달인다운 승복의 아량, 경쟁자나 심판자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 배려의 정신, 최선을 다 함으로 만족하는 냉혹한 자기평가와 자아보상, 이런 것이 어떤 금메달 보다 빛을 발하고, 여왕다운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이제 대회는 끝났고 김연아는 비록 은메달에 그쳤지만, 그는 여전히 세계 피겨스케이팅 팬들의 뇌리에 영원한 여왕으로 남아있다. 국민들의 부름을 뿌리치지 못해 벗으려던 스케이트화를 다시 신었던 김연아는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가 잠시 쉬도록 놓아주는 것이다. 이곳저곳 행사장의 꽃으로 불러내고, 신문 방송카메라 앞에서 같은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게 하는 피곤을 안기거나, 불공정심판을 들춰내어 가슴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일을 삼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 모두에게 메달과  관계없이, 차별 없는 격려와 위로를 보내고, 평창게임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일이다.  

 비단 올림픽뿐만 아니라, 각종 국제경기에서 우리는,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열광하면서 고단한 삶에 위안을 받고 자긍심을 키우며 새로운 의지를 다잡아왔다. 악조건 속에서 땀과 눈물로 기량을 닦아 국위를 선양하고, 우리에게 위안을 준 선수들에게 보내는 박수와 격려, 성원은 당연한 보답이다. 우승 여부나 메달색깔이 국민성원의 차별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소치 올림픽 기간 내내 나라 안은 시끄러웠다. 모처럼의 남북이산가족상봉 장면들이 우리의 아픈 가슴을 새삼스레 찌르기도 했지만, 더 아프고 절망스러운 건 빙판을 질주하는 선수들과 달리, 한 발작도 진전이 없는 이전투구로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국내정치 현실이다.

 마감을 앞둔 정기국회는, 여야 혹은 당내 계파갈등으로 장외 언성만 높일 뿐, 의석을 비운 의원들은 엉뚱한 일에 바빴다. 38명은 한중의회교류차 중국으로, 7명은 올림픽 응원차 소치로, 의장을 비롯한 9명은 장보고기지 준공식 참석차 남극으로 출장 외유 길에 올랐다. 그 밖에 숱한 의원들도 국회일정을 팽개친 탓에 회의장은 썰렁하고 통과를 기다리는 숱한 법안은 여전히 동면중이다. 1심에서 내란음모혐의가 유죄로 인정 된 이석기의원의 제명처리도 물 건너갔으니 계속 의원대접에 세비를 줘야할 판이다. 야당은 기초선거정당공천제폐지와 공무원간첩 증거조작의혹,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한 특검도입 피켓을 들고 또 거리로 나섰다. 불복이 고정메뉴인 야당은 여전히 버티고, 역할을 잃은 여당은 여전히 엉거주춤이다. 

 


 ‘따끈따끈한 밥 식기 전에’ 법안의 적기통과를 독려하는 대통령의 당부에도 의원설득에 나서야할 장관들은 꿈쩍도 않고, 열쇠를 쥐고 있는 야당의원들은 ‘장관 코빼기도 보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란다. 그래서 청와대가 단단히 뿔이 났단다. 장관들은 왜 꿈쩍도 않는가? 야당 의원들은 왜 그렇게 ‘장관의 코빼기’가 보고 싶은 건가? 까닭이 아리송한 이런 사태, 진전 없이 정체(停滯)된 정치, 정책구현이 난망인 행정. 이런 상황에 ‘뿔’이 날 당사자는 국민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국민들은 찍소리 없이 분노를 안으로 삭이고 있다. 소치에서 용전한 선수들이 준 위안의 덕인가 보다. 이제 그들이 돌아왔다. 국민들은 그들이 준 환희와 위안을 위로와 격려로 갚을 차례다. 정치인들은 선수들의 승복하는 아량과 배려의 정신,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 하는 극기와 냉혹한 자기평가를 본받아, 국정의 막힘없는 질주를 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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