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성수 서양화가·시각예술가


서양화를 전공한 한성수(36·사진·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581 미소시티 1동 301호·☏010-9854-1979)씨는 자신을 두고 ‘시각예술가’라고 했다. 조각과 사진, 디지털 미디어 등을 회화에 접목시키는 작품을 시도하는 그에게 ‘서양화가’로는 자신을 다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아 스스로 붙인 이름이라고.
일요일 오후 청주시 산남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유화물감이 잔뜩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청주의 봄’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상당산성의 사진 이미지에 가로수길 등 청주를 상징하는 회화를 더한 작품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공간은 화가의 작업실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공학도의 실험실 같았다.
실재로 그는 사진과 디지털미디어를 통해 낯선 이미지의 충돌을 의도하며 공간을 재조합하는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듯 했다.
시각예술가 한성수씨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감추거나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몰래 미술학원에 다녔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학원 강사와 호프집 아르바이트로 대학생활을 했던 경험, 지금은 극복했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로 틱 장애를 겪었던 일, 세 아이를 키우며 전업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삶의 어려움과 미술교재에 등장할 만큼 미술사적으로 한 세계를 연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의 이야기까지.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고민하는 화가로 성장하기까지 한씨의 삶은 평탄하고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워낙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청주 운호고에 입학하자마자 클럽활동으로 미술반에 들었고, 그해 봄 부모님과 상의 없이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학원비 문제로 어머니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아버지 몰래 3년이나 미술학원에 다녔고, 결국 충북대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전교 1·2등의 성적을 유지하고 반장과 회장을 도맡아 할 만큼 똑똑한 아들이 화가가 된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반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화가 아들의 가장 큰 후견인이 되어 주셨다. 늘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아들의 성실함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을 운영하며 한 달에 1500만원이 넘는 많은 돈을 버는 달콤한 생활을 접고 그는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5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미술학원으로 부자가 되기보다는 창작하는 ‘화가’로서의 삶이 더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화가의 길이었기에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작품 활동과 학업에 매진해야 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교육학과 미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2년 충북미술대전 추천작가상·특선, 무심회화회 올해의 작가상, 청주시문화상, 현대충청신진예술상 등 굵직굵직한 상을 받았고 국내는 물론 뉴욕과 일본, 벨기에 등에서 다양한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해 지역의 문화와 정서, 개인의 삶속에서 얻은 개별성을 바탕으로 글로벌한 시각적 언어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백남준과 강익중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목표로 세계 어느 자리에서든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제 작품에서 ‘올곧은 작가정신’과 ‘진실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길 기대합니다.”
1979년 청원에서 출생한 그는 충북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충북대 교육대학원과 홍익대미술대학원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충북대·청주대·서원대·청주교대 외래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글/사진·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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