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수필가)

  제 집 식구는 여러 군중 속에서도 용케 알아본다. 어린 아이일지라도 핏줄 당김이라고 핏줄은 서로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한다.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호텔에서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3년 4개월 만에 전격 성사된 것이다. 설날을 계기로 재개된 만남은 1·2차로 나눠 남측 이산가족 82명과 북측 88명이 60여 년 간 애타게 그리던 부모와 아들 딸,형제자매를 만나 그야말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긴 세월 가슴에 납덩이를 단 채 한(限)을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니 왜 그렇지 않겠나. 혈육을 빤히 바라다 보이는 지척에 두고 만날 수 없는 그 가슴앓이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지구상에 이런 유일한 나라가 있다는 것도 생각하면 기막힌 일이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의 운명 또한 기구 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인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가족을 만나겠다고 목숨을 건 모험을 하다 끝내 일정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서둘러 돌아와야 했던 할아버지와 그분을 모시고 간 아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의 모습도 안쓰러웠지만 그분들의 가슴은 누구 못지않게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2박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들은 만났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가. 그것도 온전히 주어진 시간이 아닌 11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었다. 못 만나 애가 타던 60년이라는 세월에 비하면 촌음에 가까운 짧은 시간이다. 서로가 조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에 무엇을 얼마나 흉금을 터놓고 얘기 할 수 있었을까. 그나마 아직도 못 만나 생사조차 모르는 사람들에 비하면 분에 넘치는 홍복이라고 해야 하는가.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산가족들의 고령화다. 1차 남측 상봉단 82명 중 90대가 25명, 80대는 41명으로 80세 이상 고령자가 80%가 넘었다고 한다. 2차 북측 상봉단도 88명 중 80대 이상이 82명으로 그 비율이 90%를 넘었다. 건강상의 문제로 상봉장이 아닌 응급실에서 상봉 하는가하면 치매로 정작 가족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건강 악화로 만남을 포기하거나, 상봉 행사만을 손꼽아 기다리다 숨져 끝내 혈육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니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적십자 총재 유중근 씨는 “이산가족 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신청자가 12만9264명인데 이 가운데 5만7784명이 돌아가시고 7만1480명이 살아계시다. 문제는 생존자 가운데 70대 이상 고령 이산가족이 81.5%이며, 해마다 3000~4000여명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유 총재는 이어서 “고령 이산가족들이 한 명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생사, 주소확인은 물론, 이번에 만나신 가족부터 시작하는 자유로운 서신왕래, 그리고 상시 상봉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함께 북한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기다리던 부인이 상봉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잘 만나고 돌아왔느냐?’ 고 묻는 말에 “다 죽고 없어…” 이 처절하고 한스러운 대답 한 마디는 칼로 생살을 도려내는 듯 어떤 말보다도 무겁고 아픈 천근의 무게로 다가온다.

   “내 동생 맞습네까?”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살아 계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살아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나같이 생이별의 회한이 서린 대화다. 왜,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막힌 얘기다. 어떤 아픔보다도, 혈육 간 생이별의 한은 그렇게 모질고 질기다.

   하루속히 상봉을 정례화 하여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상봉인원을 대규모화하여 못 만나 괴로운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는 사라져야한다. 서신 교환은 당연한 것이 되어야한다. 내 핏줄끼리 편지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부등켜안고 헤어짐이 아쉬워 울부짖고, 떠나려는 버스 창가에 손을 놓지 못하는 그들의 눈물의 의미는 참으로 순수한 육친의 정인데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작별상봉’이란 말은 도대체 누가 지어낸 말일까. 전화통화를 하루속히 허용하고 화상상봉 같은 간접상봉도 늘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야 한다. 돌아가시기 전에 핏줄의 한을 남기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의 간절한 염원에 반하여 이산상봉 행사 중에 NLL을 3차례 침범하고 미사일을 10차례나 쏘는 엉뚱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양면의 얼굴을 가진 북한의 행위는 참말 이해 할 수 없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인륜, 천륜을 거스르지 말자”며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정례화와 대규모화를 이야기한다니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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