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충북대 교수)

  평년보다 추위가 덜했던 올 겨울이라지만 일부지역에서는 폭설 피해가 어느 때보다 컸던 것 같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폭설로 인한 참사는 참으로 애통한 인재 사고였다. 청운의 꿈을 채 펴지고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꽃다운 영혼들을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 키운 자식을 그렇게 가슴에 묻어야 한 부모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꺼낼 수 없다. 생사를 넘나들며 악몽 같은 순간을 견디며 함께 위기를 극복해낸 부상자와 동료학생에게도 어른으로써, 대학의 구성원으로써 할 말이 없다. 공포에 떨다 먼저 간 학생들의 명복을 빌며,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진 학생들은 하루 빨리 부상과 스트레스로부터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외부에서 숙박하며 진행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재조명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3월 봄기운을 느낀다. 어느새 마른 나뭇가지에 푸른빛이 감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학생들 사이로 밝은 햇살이 눈부시다. 구내식당은 배식 대를 중심으로 길게 늘어선 겹줄로 북적이며 캠퍼스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 아직 청소년 티를 벗지 못한 신입생과 만나는 이번 학기 첫 강의는 반가운 마음에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지난 학기 연구교수로 강의를 하지 않았던 나는 강의에 목마름을 느끼기라도 했나 보다. 역시 선생은 학생과의 만남만큼 소중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생동감 넘치는 교정이 어느 때보다 정겹게 다가온다.

   대학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예고되어있는 대학가는 봄의 정서를 즐길 만큼 여유롭고 평화롭지 않다. 학생들에게 입학과 졸업의 즐거움을 누릴 낭만의 시간은 그리 길게 허용되지 않는다. 성과연봉제로 인해 교수들은 연구, 강의, 봉사 영역의 실적 쌓기 무게를  감당하느라 벅찬 숨을 몰아쉬어야 한다. 가끔 방학인데도 출근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는 정말 대답하기 곤란하다. 방학기간이 연구나 논문지도를 수행하고 다음 학기의 수업준비를 하기에 그리 충분한 시간이 아님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입시철이 되면 학생 지원율과 등록률 높이기 위해, 또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마케팅전략을 배워가며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대학정보 공개가 의무화되면서, 현시적으로 나타나는 평가항목의 실적에 노예가 된다. 이런 상황에 몰려 대학이 본분을 잃게 되는 것은 않을까 걱정된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는데, 대학의 신설과 증원을 대폭 확대하게 된 시점에서 좀 더 미래를 예견하고 신중하게 접근하였다면 여러 가지 낭비요소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말로는 대학 운영을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긴다고 하지만, 연연이 새로운 사업 공모를 통해 예산을 지원하는 제도는 비효율적인 경쟁만 부추기고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모두가 인정할 만한 부실대학은 정리되어야 하고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겠으나,  너무 조급하게 인위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2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저 출산 현상과 같이 다시 대학교육의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지 않도록 거시적인 안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뚜렷한 목표도 없이 모두 대학 진학을 하는 사회분위기도 달라져야한다. 대학 졸업생이 넘쳐나니 원하는 취업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진학의 목적을 취업에만 두는 것도 문제이다. 수요자 요구에 맞춰, 전공을 불문하고 취업률이 학과평가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 평가결과가 예산 등 교육의 기본적 지원 기준이 되는 한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 되지 못한다. 학문연구와 계승이라는 대학의 본질적 존재가치는 인정되어야 한다. 기술의 전수가 중요한 실용학문 분야는 전문분야의 지식을 쌓은 인재가 산업사회에 기여함을 궁극적 목표로 삼을 수 있겠지만, 산업사회의 취업과 직접 연계되기 어려운 인문학과 같은 학문의 보호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모든 대학에 국어국문학과가 존재할 필요는 없겠지만, 수 십년의 역사적 전통을 가진 대학에서 조차 시장논리에 밀려 국문학과 폐지를 거론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청소년들이 부모와 사회분위기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자신이 행복하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고 진로를 선택하게 지도해야 한다. 취업 후 필요한 학문을 공부하겠다는 절실함이 생겼을 때 대학에 진학하는 선진사회의 교육모델을 본받을 만하다. 대학 진학에 적령기란 없다. 대학진학의 참다운 목적을 바로 세우는 것도 대학 정원 조정 대안과 함께 깊이 고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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