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사회학박사)

매년 3월 8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각각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여성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담은 다양한 문화축제와 여성의 권리 및 동등한 참여, 그리고 여성에 대한 차별 종식 등을 주제로 한 정치적, 사회적 인식제고를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게 된다.
세계 여성의 날 제정의 근거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여성노동운동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857년 뉴욕시의 방직,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켰고, 2년이 지난 1859년 최초로 여성의류 노동조합을 결성하였으며, 이후 여성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908년 2월 28일 뉴욕시에서는 15,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단축, 임금인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마침내 미국사회당에 의해 1909년 2월 28일이 첫 번째 ‘전국 여성의 날’로 미국 전역에 선포되었으며, 이후 매년 2월 마지막 일요일에 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유럽에서는 1910년 8월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유럽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에 의해 조직된 국제적 노동단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의 여성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은 모든 나라에서, 매년 같은 날에 여성의 권리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를 열 것을 제안하였으며, 이듬해인 1911년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에서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3월 19일에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는 약 100만 명의 여성이 참정권, 일할 권리와 직업훈련 권리, 차별철폐 등을 요구하며 집회와 행진에 참여하였다. 3월 19일은 1848년 프러시아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계급의 봉기 움직임에 위협을 느껴 여성 참정권을 포함한 개혁을 약속한 날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월 19일을 선택한 것을 보면 20세기 초 세계 여성들의 가장 절실한 염원은 참정권 획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1913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1917년에는 1차 대전으로 200만 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사망한 암울함과 식량부족 등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던 여성 노동자들이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는 결국 전쟁의 종식과 제정 러시아 황제의 폐위 요구로까지 이어졌다. 이 시위는 제정러시아 2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고 제정 러시아는 멸망했으며 마침내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1917년 페트로그라드에서 여성의 날 행사 시위가 시작된 이 날은 율리우스력(舊曆)으로는 2월 23일이고, 그레고리력(新曆)으로는 3월 8일로 매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 된 배경이 되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정치적 성향과 의미는 1930년대를 시작으로 상당히 약화되었으나 1960년대부터는 차이와 다양성을 강조했던 제2세대 페미니즘의 등장으로 다시 활성화되었고, UN이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로 선포하고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함으로서 세계 각국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3월 한 달 동안 여성단체들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구소련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불가리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몽고, 쿠바는 물론 이탈리아와 중국에서도 세계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부터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열리기 시작했고 이후 전쟁과 분단 등으로 맥이 끊겼다가 1985년부터 여성노동운동 단체들이, 그리고 1987년부터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하여 올해로 30년 동안 여성노동운동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2009년부터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를 비롯한 보수 여성단체들이 연대하여 여성의 권익신장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세계 여성의 날 기념 대토론회’와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노동운동 및 사회주의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여 여성의 지위향상과 권익신장을 위해 전 세계 여성이 국적, 인종, 종교, 세대를 뛰어넘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고 있다. 우리 모두 3월 8일에는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와 정신을 새겨보자.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아직도 고통 받고 소외된 여성이 우리 주변에는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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