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논설위원, 소설가)

알프스를 오르던 케이블카가 급경사 구간에서 멈췄다. 탑승초과. 한 명이 내려야 했다. 그러나 케이블카 밑은 깊은 계곡.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이스라엘 일본인 등 7 명의 승객은 백발의 이스라엘 승객을 흘끔거렸다. ‘살 만큼 살았으니.....’ 무언의 압력이었다. 이를 감지한 이스라엘 노인이 일어서려할 때, 독일 청년이 그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고 말 했다.

 ‘당신대신 내가 뛰어 내리겠소. 우리는 당신들에게 지은 죄값을 아직 다 갚지 못했습니다.’ 

 독일 청년이 케이블카에서 뛰어내리려 할 때, 벌떡 일어선 한국 청년이 그를 제지하고. 유독 이 장면을 외면하고 있는 일본인 승객을 번쩍 들어 문 밖으로 홱 집어 던졌다.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승객들은 박수하고 멈췄던 케이블카는 다시 움직였다.

 ‘오래 된 농담’이다. 독일 청년이 이스라엘 노인 앞에 무릎 꿇은 까닭도, 한국 청년이 일본인 승객을 집어던진 이유도, 승객들의 박수의 의미도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성 싶다.

 일본의 혐한류가 갈수록 극성스러워지고 있다. 아베 집권 후 휘두르기 시작한 ‘욱일승천기’와 함께 준동하는 우익세력의 광태 때문이다. 군국일본의 재현을 꿈꾸는 이들은, 역사를 부정하고 만행을 정당화함으로써 지지세력을 넓히려는 우파정객들의 계산과 맞아떨어진다. 소수 양심세력이 아베의 우경화질주와 혐한류를 비판하지만, 폭풍의 언덕에 선 등대처럼 외로울 뿐이다. 한마디로 최근의 혐한류 극성은 보수정권과 우익유권자들이 손잡고 벌이는 합작품이요, 오욕의 과거를 싸덮고 한일갈등의 책임을 한국 탓으로 돌리려는 발버둥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상처는, 끊임없는 덧들임으로 세월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한반도 남서해안에서 살상과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의 등쌀, 전국을 초토화 시킨 임진란, 국권을 몽땅 탈취했던 36년간의 강제병합, 뿌리 깊고 뼈아픈 상처에 치유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 중, 독일청년의 행위가 이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속죄하려는  독일인들의 양심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상황을 외면하고 있던 일본인 승객을 집어 던진 한국청년의 행동은, 일본의 몰염치, 비양심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피해자의 상처 치유에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약이다. 이차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은 같은 가해자였다. 독일은 피해자인 유대인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는 물론, 수차례에 걸쳐 수백억 달러의 거금을 투입, 피해자들의 상처치유와 보상에 성의를 다하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전 현직 수상이 피해자들의 영혼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직접 피해를 입은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서구 일부국가의  비난과 유엔의 결의조차 깔아뭉갠 채, 가해사실의 부정과 은폐, 시혜론만 외치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신들에게 날아드는 비난의 화살을 한국 탓으로 돌리기 위해, 총리와 각료는 물론 신문 방송과 출판계가 합작으로 한국비난과 비하에 열을 올려, 혐한류를 선동하고 있다.     아베총리는 ‘일본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로 협력해야한다.(13.11.14)

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도, 뒤로는 ’한국은 교섭할 수 없는 어리석은 국가‘ ’박근혜 대통령이 반일을 불태우는 것은 윤병세 외교장관 같은 간신 때문이다‘라는 등의 표리부동한 비하발언을 흘리며, 혐한류에 기름을 붓고 있다.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고노 담화(93) 무라야마 담화(95) 호소카와 담화 등, 전 각료들의 과거사 반성발언에 대한 검증, 수정을 시사하면서 ’정신대는 조선여인들이 돈벌이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정신 나간 소리로 가해의 책임은커녕, 상처를 다시 찌르고 있다.

 


 보수 언론과 학자, 작가들 역시다. ‘주간문춘’이나 ‘NHK'등 언론은 혐한류 선동을 지나 한국의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막장기사(아줌마외교. 성인 남자친구가 필요)를 흘리고, ’보한론(바보한국)‘ ’악한론(惡韓論)‘의 저자 무로타니 가스미는 ’세계가 경멸하는 불쌍한 나라‘ ’매춘 수출대국의 철면피‘라는 모멸적이고 악의적인 문구를 구사, 혐한류를 요트 삼아 베스트셀러 작가의 호사를 누리고 있다. 상처와 분노를 끌어안고 있는 우리 앞에, 무례,무절제한  언사를 남발하는 일본의 혼네는 과연 무언가? 그 야심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제 ’오래 된 농담‘ 따위는 버릴 일이다. 험구난사(險口亂辭)로 맞대응하는 건 우리 국격의 훼손이고, 접어놓고 침묵하기엔 상처가 너무 아프다. 학자와 언론은 일본의 험구를 막을 자료와 논리개발을, 정부는 국제공조와 외교적 압박을 통해, 일본이 내던진 양심을 되찾게 한 후,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길은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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