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문예정 주목받는 충청권 성지

(왼쪽부터)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 충남 당진 솔뫼성지, 꽃동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공식 결정됨에 따라 충청도내 천주교인들은 크게 기뻐하고 있다. 교황의 방한 일정 중 대부분이 충청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14~18일 4박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다.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주례하고, 당진 솔뫼 성지를 방문하며, 16일 오후에는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장애 아동과 수도자, 평신도와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17일에는 서산 한서대에서 열리는 아시아주교회의에 참석하고 해미 순교성지에서 아시아청년대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폐막미사를 집전한다. 지면을 통해 교황 방문 예정지 중 충청권의 성지와 복지시설인 당진 솔뫼성지, 서산 해미순교성지, 음성 꽃동네를 소개한다.

● 충남 당진 솔뫼성지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해서 순우리말로 ‘솔뫼’라 이름 붙여진 곳. 당진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증조 할아버지인 김진후(비오),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한국의 베들레헴’이라 불리기도 한다.

김대건 신부는 15세인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돼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천주교를 탄압하던 조선 땅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애쓰다 1846년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한다.

1906년 당시 합덕 성당의 크램프 신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60주년을 맞이해 김 신부의 생가터를 고증했고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해 인근의 토지 매입을 시작했다. 1946년에는 순교 100주년을 맞아 백 빌리버 신부가 김대건 신부 복자비를 설립했으며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이 계획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이곳은 충남 문화재 146호로 지정돼 있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 안채가 2003년 복원돼 해마다 많은 신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현재 성체조배실로 개방하고 있다. 1만여 평의 울창한 소나무숲도 볼거리. 사시사철 푸른 노송들이 김대건 신부와 집안 순교자들의 굳은 신앙을 말해주는 듯 하다. 소나무숲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상이 순교복자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기념관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당시 한국교회의 박해 상황을 살펴볼 수 있으며 관련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의 편지와 기해박해 보고서도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십자가의 길, 3000여명이 수용하능한 솔뫼 아레나(원형공연장 겸 야외 성당), 순례자 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 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
병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부터 1872년 사이에 충청도 각 고을에서 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명 이상이 생매장당한 곳. 한국에서 유일하게 생매장 순교 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순교자의 유해가 확인, 발굴, 보존돼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성지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있어 대박해로 기록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외에도 많은 내포 지방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병인박해 당시만도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가 1000여명으로 기록돼 그 이전 80여년을 포함하면 수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속적인 박해 동안 해미 진영(현 해미 읍성)의 감옥 두 곳에는 천주교인들이 항상 가득했던 것으로 전해 온다. 감옥터에는 당시 손발과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고문대로 쓰이던 호야나무 가지가 지금도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교인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교수,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처형했으며, 병인박해 당시에는 많은 숫자의 죄수들을 한꺼번에 죽이면서 생매장형이 시행됐다.

1985년 4월 해미 본당이 창설된 후 해미 순교 선열 현양회가 발족됐고, 순교 성지 확보 운동을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에게 홍보해 꾸준히 모금한 결과 1998년 말 7000여평의 생매장 순교 성지가 확보됐다.

1999년 3000여명의 회원들로부터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아 2000년 8월 기공식을 했으며, 2003년 기념 성전을 건립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 생매장이 있었던 여숫골에는 현재 이 일대에서 생매장 당한 이름 모를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높이 16m의 탑이 세워져 있다. 당시 죽음을 앞둔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했으나 마을 주민들이 잘못 알아 듣고 ‘여수머리’라 부른 데서 ‘여숫골’이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홍수로 유실됐으나 1935년 그 일부가 발굴됐다.

● 충북 음성 꽃동네
꽃동네는 한국 천주교회 최대의 종합복지시설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종합복지시설이기도 하다. 입양기관인 천사의 집부터 호스피스 시설인 임종의 집까지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1976년 청주교구 사제서품을 받고 무극천주교회 주임 신부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가 설립한 곳. 당시 오 신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밥 동냥을 해 18명의 병든 다른 거지들을 먹여 살리던 고 최귀동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며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 용담산에 ‘사랑의 집’을 지어 꽃동네를 일구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현재 5000여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몸으로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회원 211명),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회원 65명), 예수의 꽃동네 제3회원(1000여명)의 헌신적인 봉사가 꽃동네 운영의 큰 힘이 되고 있다. 100여만 명의 꽃동네 후원 회원이 있으며 이중 11만 명이 매달 후원 회비를 내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음성 꽃동네를 모원으로 가평 꽃동네, 강화도 꽃동네가 설립돼 있다. 또한 방글라데시, 필리핀, 우간다, 아이티, 인도, 캐나다,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 한국을 포함한 세계 10개국에 꽃동네 분원이 있으며 현재 아르헨티나 분원 설립이 추진 중이다.

1986년 설립된 ‘사랑의 연수원’을 통해 매년 20∼30만 명의 학생, 직장인, 군인 등에게 생명의 존엄성, 가정과 사회, 국가와 인류의 참된 행복의 길을 가르치는 ‘국민 교육장’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복지 전문인재를 양성하는 꽃동네대와 꽃동네에 버려진 중증중복장애아동을 위한 꽃동네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사랑의 영성원’, ‘사랑의연구소’를 갖추고 있다.

장봉훈 천주교 청주교구장은 “꽃동네는 38년간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300여명의 수도자, 1000여명의 봉사자가 그야말로 교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곳”이라며 “이러한 의미에서 교황은 한국 방문지로 꽃동네를 선택하셨다”고 밝혔다.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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