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본사 상임이사)

퇴근길에 만난 사회복지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노인들을 위해 점심봉사를 하는 복지관의 책임자였다.

며칠 전 어느 후원자들이 복지관으로 기부금을 보내와 평소보다 푸짐한 음식으로 노인들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해드렸단다. 그는 평소보다 좋은 음식을 노인들께 대접한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고, 기부를 해준 사람들이 고마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기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찰에서 연락이 오더니 조사할 일이 있다고 하더란다.

왜 음식을 대접한 것이냐? 누가 돈을 낸 것이냐? 돈은 어떻게 썼느냐? 등등 질문에 대해 기부금을 보낸 사람의 신분과 그날 음식재료를 구입한 영수증, 봉사 내역 등을 일일이 제출하고 확인한 끝에 조사는 싱겁게 끝났지만, 조사를 한 경찰관도 조사를 당한 그도 세태의 변화에 씁쓸하게 웃었다고 했다. 그날 일어난 해프닝은 알고 보니 노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6.4 선거에 출마하는 한 예비후보가 나타나 노인들과 악수를 하고 다녔고, 그것을 본 어느 노인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예비후보는 제공한 음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복지관측도 와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또 다른 사회복지사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임지에서 친하게 지냈던 공무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단다. 오랜만이라 반가워했더니 한번 얼굴 좀 보자고 해서 약속을 하고 기다렸단다. 그런데 약속한 장소로 나타난 공무원은 선거 예비후보의 부인을 대동하고 나타나 소개를 했고, 식사를 한 후엔 선거법 위반으로 식사값을 낼 수가 없으니 대신 내달라고 하더란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식사 값을 지불하면서 씁쓸했다고 했다.

선거법이 무섭다.

최근 안전행정부는 공직자 선거법 위반행위를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공직자 선거법 위반행위 ‘익명신고시스템’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익명신고시스템은 신고자의 성명 등 신상내용을 일체 기재하지 않고 익명으로 신고대상과  내용만 기재하면 신고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와 함께 안행부는 시·도 합동으로 200명 규모의 ‘특별감찰단’을 편성해 공직자의 선거개입행위 적발 및 금품·향응수수, 공금횡령 등을 중점 감찰할 계획이다.

돈 안드는 선거를 지향하면서 법으로 규제하는 사항들이 많아지고 선거법 위반을 엄격하게 다루다 보니 서로가 민감해진 탓일까,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 하긴 자칫 선거법을 가볍게 여겨 위반하게 되면, 4년간 공들이며 기다려온 선거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선거법이 무서울 수 밖에 없고, 유권자들도 조심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얼굴을 모르는 선관위의 모니터 요원들이 곳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활동하고 있고, 앞서 얘기한 노인처럼 매사를 선거법의 잣대로 바라보는 감시의 눈이 어디 있을지 모른다. 외밭에선 신발끈을 매지 말랬다고 동창회나 향우회나 순수한 모임조차 정치적으로 오해받을까봐 조심하게 되고, 행여 동향이거나 동문인 예비후보가 행사장에 와서 인사라도 할라치면 인사말을 하게 해야하나, 소개를 해야하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런 가운데 민간단체들도 고민이 크다.

단체들의 특성상 일년내내 크고 작은 행사들을 개최해야 하는데 지자체로부터 받는 보조금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지자체 지원금 행사는 선거기간에는 개최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지만, 단체들의 반발이 크다. 지자체로부터 일부 보조금을 받는다고 해서 그 행사가 과연 지자체장의 선거에 유리한 행사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해석 때문이다.

 


신규 행사라면 개최 시기의 조율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매년 같은 시기에 개최하던 연례행사를 선거가 있는 해만 계절을 바꿔 시행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행사에 참가하는 시민들도 행사를 선거와 연관짓지는 않는다.

행사주최자는 물론 참가자들도 혼란을 겪는 이런 해석은 고려돼야 한다. 이런 반발 때문인지 올해는 예년대로 행사를 진행하는 단체가 늘어났다. 선거법의 해석에 유연성이 필요하다. <상임이사>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