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침례신학대 교수)

몬순은 계절풍.
열대몬순, 아열대 몬순, 중위도몬순, 한 대몬순, 몬순아시아, 기니안몬순. 대기순환이라고 할 정도로 넓은 지역에 걸쳐 겨울과 여름의 풍향이 정반대로 바뀌는 현상.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가는 방향이 바뀌는 순간의 지점에 서 있다면 어떨까. 이 바람은 대륙과 해양의 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데. 태풍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없이 많은 그 무엇들.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지만 어쩔 수 없는 바람의 영향 안에 있는 사람들, 그 삶에 다시 불어올 다른 방향의 바람을 한꺼번에 생각해 보려는 것으로 편혜영의 『몬순』을 읽을 수 있겠다.  

2014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몬순』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매력, 불안사회의 징후를 읽어내는 법, 삶의 불확정성에 대한 응시, 건조하고 냉담한 문체에 실린 블랙홀의 힘이 있다고 보았다.

부부가 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외출하는 것을 길에서 본 남편은 아내 뒤를 따라간다. 아내는 술집의 두터운 문을 열고 들어갔고, 자신은 그 문을 열고 확인할 자신이 없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고이 자고 있고, 남편은 다시 아내를 찾아 나선 길에 아내가 돌아오는 것을 목격한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고 남편은 아내가 들어갔던 술집에 들어갔다가 아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아이는 죽었고, 둘은 아이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며 허둥댄다. 그런 부부들, 둘에게 어떤 외풍이 닥치면 서로 할퀴고 다투고 망가뜨리면서 바람 향방에 따라 이리저리 쏠리며 휘둘리는 관계들이 있다. ‘책임과 오명을 함께’ 나눠 갖지만 함께 헤쳐나가지는 못하고 허청대는 관계의 밑바탕에는 상대에게 책임과 오명을 떠넘기고 싶은 불안과 의혹이 있다.

남편의 의혹은 자신이 아이를 혼자 재워두고 아내가 혼자 외출해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지만 아내가 그날 거기 다녀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을 통해 알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기억과 실은 아내는 거기 다녀가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충돌하지 않고 남편 안에 공존한다. ‘그게 이상했다. 누구도 그날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것. 여기에 왔었던 것은 자신뿐이라는 것, 자신만이 분명치 않은 걸음에 홀려 아이를 두고 홀로 이곳에 왔다는 것.’은 사실이고 인정해야 하지만 억지를 부린다. ‘억지를 부린다는 걸 알았지만 확신을 버리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억지를 부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억지에 확신까지 동원하는 이 휘둘림이라니. 두려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허약함 때문일 터. 아내는 아이의 죽음에 대해 고통받을 뿐 아니라 부정에 대한 의심에도 답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난 이런저런 일을 겪었어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과학관 관장 노릇을 할 때 회의실에 앉아서 고개만 끄덕이고 직원들에게 생물이나 기후학, 명종동물에 관해 기초적인 것 물어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난 직장이 거기인 탓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논리적이고 실증 가능한 과학에 대해서 사람들과 자주 얘기하지만, 그러다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단정하고 확신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거요. 인생이라는 건 과학보다 훨씬 복잡하잖아요. 아마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은 과학 이상이니까요.”

 


남편 의식 속에서 어쩌면 아내가 만나려던 인물일 수 있을 관장이 남편에게 건네준 말이다. 일 년의 절반은 바다에서 대륙으로, 또 절반정도는 대륙에서 해양으로 불어간다는 몬순, 그렇게 되어있는 바람의 향방이 계절을 바꾸고 얼음으로 덮인 지면을 녹여 씨앗을 틔우고 곡식을 길러낸다. 이 소설은 기이한 불안의 심연이 약한 인간의 모습, 관계, 확신같은 것들에서 오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고통은 뜻밖의 것에서’ 오고, 사람이 ‘분명치 않은 걸음에 홀려서’ 겪어내야 하는 일들. 사람 사는 일에 뜻밖의 고통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고 의연히 겪어낼 용기가 눈물겨운데, 몰라서 못하고 알아도 못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또 한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결국 사람의 허약함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가 아주 견고하다고 믿는 관계도 실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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