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 소설가)

 양천 씨가 여생을 마누라와 천년만년 살려고 향리에 삼간짜리 양옥주택을 마련했다. 집 앞엔 정원 대신 집터보다 더 넓은 100여 평 남짓한 채마밭도 있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전원생활을 해볼 양이었다. 그런데 마누라가 8년 만에 그만 가고 말았다. 이런 놈의 일도 있는가! 양천 씨의 나이 78세다.

 애초 낙향할 때 옛 동료들이 말렸다. “여보게, 나이 칠십이 적은 나인 줄 아는가. 아마 자네도 느낄 껴, 그것 생각도 멀어지잖아. 자네 하룻밤에 오줌 몇 번 눠. 모르면 몰라두 서너 번은 일어날 껴. 그러면 잠 설치지, 이튿날 노곤하니 맥 못 추지, 그리니까 식욕 없지, 그런데 뭐 농촌에 들어가서 백여 평 채마밭이라두 가꾼다구. 야, 열 평이나 질라나 모르겠다. 장신차려 이 사람아!” “마누라 때문이지. 좀 나질라나 하구….” “지금 저 사람 말 새겨들어 이 사람아, 그리구 뭐 마누라, 마누라 때문에라도 더더욱 도회지에 있어야 되는겨, 보아하니 자네마누라 비만이지, 고지혈이지, 당뇨 있지, 관절 좋지 않지. 그래서 밥보다 약으로 살잖아, 그런 마누라 데리구 시골구석에 들어가서 같이 그 힘든 농사일이나 한다구, 병이 낫기는커녕 더 도지겠다. 그럴수록 병원이 가까워야 되는겨 이 사람아. 인제 운전대도 놨다며, 그런데 그 백여 리나 되는 델 버스 두세 번 갈아타고 어떻게 나올껴, 잘 생각해봐!” “채마밭은 내가 하지 마누란 그냥 휴양 차…” “나도 한마디 해야겠네. 휴양 차, 자네 퇴직금 일시불로 받았잖아. 그것 고대로 다 갖고 있나, 아마 모르면 몰라두 자식들한테 얼마씩 갔을껴. 다행히 다 갖고 있다 쳐, 지금, 은행금리가 얼만가. 아마 백만 원도 안 될껴. 그것 가지고 마누라 약값이다 생활비다 그 외에 뭣 뭣이다. 밥이나 먹고 살아갈 수 있겄어. 자네 그래두 지금까지 산 것 보면 아마 그 퇴직금이라는 것 곶감꼬치 빼먹듯 해서 헤실바실됐을 게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휴양도 맘이 편해야 하는 거구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 시골 공기 마시면서 죽어라 하구 남새밭이나 가꾼다고 되는 게 아냐 이 사람아!”

 다 염려해서 해준 말이었다. 그러나 마누라는 그간 시골생활을 좋아했지 옛 그 동료들의 우려가 현실이 돼서 간 게 아니었다. 저녁산책길에 나섰다가 뺑소니차에 의해 뇌사상태를 당한 것이다. 서울 큰 병원에서 1년 반 동안을 보호자석에서 밤낮없이 병간호를 했는데도 마누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산소 호흡기를 단 채 끝내 숨졌다. 참으로 악몽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양천 씨는 그 후 지금까지의 2년이 더욱 힘들다. 마누라 끈이 떨어지니, 자식들이 2주일마다 번갈아 오지만 안 오는 것보다는 나을 뿐이고 적막강산의 외딴집에서 허구한 날 맞아야 하는 적적함, 외로움, 서글픔, 초라함, 무엇보다 매일 끼니를 마련해야 하고 홀로 먹어야 하는 초라한 신세는 살아 있는 늙은이의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읍내 퇴직자들 모임에 나갔을 때 이를 하소연 했다. “자네, 퇴직금 일시불로 받았다구 했지 그럼 안 돼. 연금 없는 늙은이한테 올려는 할망구들 없어. 어떤 속없는 할망구들이 죽어라하구 밥해 주구 송장이나 치우려고 하겠냐구?” “내가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줄까. 자네 퇴직금 얼마나 남아 있어?” “그래두 아직은 죽을 때까지 둘은 먹구 살 만큼은 돼.” “그럼 이렇게 하게. 한 달에 백만 원에서 백오십 만 원 한도 해서 집안도우미를 쓰게. 그런 여자들은 있대. 같이 먹고 자면서 살림일체를 다 해준다는 거야, 자네만 잘 하면 그것두 할 수 있다는 거구 어때?” 그러나 양천 씨의 속내는 마누라를 잇는 끈 역할의 반려자를 생각했던 것이어서 떨떠름해 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자네 현직에 있을 때 그 보신탕집 과부 있었잖아, 얼마나 자네한테 꼬릴치고 잘 따랐는가. 그래서 우리가 딴살림차려 잘해 부라구까지 했었구. 그 여잘 찾아보게 아마 아직 그 자리에 살아 있을지도 몰라.”

 그 자리에선 그냥 피식 웃고 말았지만 양천 씬 그들과 헤어지고 나선 발길이 어느새 그 보신탕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앗, 있다. 간판은 낡았지만 틀림없다. 그는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그러나 가게 안이 텅 비어 있다. 그때 방문이 열린다. 쭈구럭 할망구가 얼굴을 내민다. “뉘시오?” “여기 전에 과수댁이 보신탕을 했는데….” “내요, 왜 그러우?” 둘은 서로 몰라보았다. 한참 묵은 따비를 일구고서야 당사자들임을 알았다. “아이고 딱하지 혼자 됐구랴. 이를 어쨔 내가 좀 젊기라도 해야 사모님 끈이라도 돼 드릴 텐데 이리 팍 늙어버렸으니….” “그래도 내 당장 내일이래도 와서 데리고 갈 테니 준비나 하고 있구려!”

 그는 이제야 마누라 잇는 끈을 찾았다는 생각에 집을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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