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올해 여든이신 친정엄마가 노인병원에 입원하신 건 오 개월 전 일이다. 큰 병은 없으나 소화기가 유난히 약하고 이런 저런 노인성 질환으로 입 퇴원을 반복하다가 결국 노인병원으로 가시게 된 것이다.

처음엔 거부감을 느끼고 다시 일반병원에 보내 달라고 하셔 다시 일반병원으로 옮기기도 했으나 이런 저런 불편함으로 다시 노인병원을 찾게 되었다.

노인병원은 우리 집에서나 여동생네 집에서 가까워 찾아 뵙기가 쉽고 전반적으로 환경이 좋아 충북지역에서 손꼽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연전에 내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느라 실습을 하기도 해서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마침 이웃 병실에 옛날 친구도 있고 아는 사람도 생기고 해 엄마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적응을 하셨다. 유난히 잔정이 많고 인심이 좋으신 엄마는 늘 주변에서 인기가 많았다. 베풀기를 좋아하고 모난 곳이 없으시다 보니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우리 형제는 오남매인데 여동생과 나를 빼고는 모두 타지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병수발은 거의 동생과 내 차지였다. 게다가 교편을 잡고 있는 여동생이 직장에 매이다 보니 비교적 자유로운 내가 엄마를 돌봐 드리는 일이 많았다.

나 또한 수시로 잔병치레를 하는 터라 나이 드신 엄마를 돌봐 드리는 일이 힘에 부쳤다. 특히 야간 병원에 가는 날이면 밤새 거의 잠을 못자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는 일이 많았고 그럴 때면 엄마는 서운하신지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너그럽지 못한 내 성정은 그러질 못했다.

 노인병원에서 생활하며 엄마는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 기분도 좋아지고 활기도 되찾으셔 어쩌다 며칠씩 외출을 하기도 하셨다. 엄마 옆 침대에 계신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누우신지 7년이 넘었다는데 말도 못하고 혼자 움직이지도 못하셨다.

그 할머니에 비해 훨씬 건강하신 엄마는 그 할머니를 돌봐드리기도 했다. 엄마와 내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할 때면 옆의 할머니는 알아듣는지 빙그레 웃으시곤 했다. 자주 병원을 찾다보니 다른 할머니들의 안부도 궁금해져 병원을 방문할 때면 같은 방에 계신 할머니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엄마의 뜻도 그렇고 다른 형제들의 의견도 그러해 이번 구정을 앞두고 퇴원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엄마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시더니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으로 하루에 진통제를 몇 번씩 맞아야 견디는 지경까지 되었다.
 
평소 병원에서나 종합검진을 통해서 정밀검사를 받아 특별한 이상이 없었는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얼굴은 반쪽이 되었고 결국 서울 사는 남동생이 서울 큰 병원을 예약했다.

 며칠 전에 병원에 가서 엄마 배를 쓸어드리며 대화를 나누는데 엄마가 힘없는 목소리로 몇 년만 더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동안 너희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으나 조금 더 해주고 싶고 자식들 밑반찬도 챙겨주고 마늘도 까주고 싶다고 하셨다.

몇 달 전에 엄마가 마늘을 직접 까주셔서 아직도 먹고 있는 나는 엄마의 말씀에 눈물이 났다.

  몇 달 전 큰애 내외가 결혼식을 앞두고 캐나다에서 들어왔을 때 흉한 할머니 모습 보이기 싫다며 병문안 오지 말라시는 걸 애들을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큰애 내외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도 너희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으마 하셨다.
 
엄마의 불심은 지극하기 이를 데 없는데다가 자식사랑이 유난하신 터라 엄마는 젊어서부터 일구월심 자손들의 무사안위를 위해 수시로 불공을 드리셨다. 자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손자들 생일불공을 지금껏 드리셨고 우리가 엄마를 만나고 헤어질 때면 우리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모아 관세음보살을 읊조리셨다.
 
엄마는 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며 몸을 우선 챙기라고 하셨고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자신의 눈에 피눈물이 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남에게 나쁜 일을 하면 그 해가 자식에게 미친다며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으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다. 엄마에게 자식은 종교였고 하늘이었다.

엄마의 염원 덕에 우리 형제들이 평화롭고 누구보다 의좋게 지내는 거라 믿는다. 간절한 마음은 하늘을 감동시키는 법이니까. 모쪼록 엄마의 건강이 회복돼 이번 봄날 함께 꽃구경이라도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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