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물리학에서,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나타내는 값을 ‘역치’라고 한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면 통증에 대한 역치가 낮아져 작은 자극도 통증으로 인식하게되는데, 역으로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역치가 올라가 더 큰 자극을 주기 전에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감각의 순응’을 겪게 된다.
그동안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충격’을 받아왔다. 도처에 널려있는 잡다한 충격들은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웬만한 충격에는 무감각해져버린 지 오래다. 워낙 큰 파장들에 부딪혀왔으니, ‘잡다한 것’들에 대해서는 ‘역치 값’이 올라간 것이다. 비도덕적인 사회로 가고 있는, 비도덕적 사회를 용인하는 ‘비도덕적 징후’다.
충북경찰청이 26일 도박판을 벌여 수억원을 챙긴 현직 교사 안모씨와 일당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가 도박판에 끼었다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충격에 ‘단련’돼 있는 사회에 끼치는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속 내용을 살펴보면 도무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된다.
경찰에 따르면 청주 한 사립고교 체육교사인 안씨는 지인들을 도박판으로 유혹해 수억원을 뜯어냈다. 그런데 그 도박판은 안씨가 주도면밀하게 ‘설계’해 놓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사기도박을 벌일 도박꾼 ‘기술자’와 바람잡이인 ‘선수’들 모집했다. 그리고 ‘세팅’까지 완료했다. 형광물질을 묻힌 카드와 이 카드 패를 확인할 수 있는 특수제작 렌즈까지 구입한 뒤 그는 자신을 믿었던 지인들의 발등을 찍기 위해 ‘호구’들을 물색해 끌어들였다. 2012년부터 지난 3월까지 2년 동안 그 짓을 벌여왔다. 피해액만 2억원이 넘는다 한다. 여죄가 드러나면 그 액수는 더 클 것이다. 피해자들이 음료를 먹고 정신이 몽롱해졌다는 진술을 보면 마약을 사용했을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이쯤되면 이건 학생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범죄집단의 보스다. 그것도 지인의 믿음을 배신한, 아주 야비하고 저열한 양아치 우두머리다.
그런 그가 과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올곧은 것을 배우는데 힘써 나라의 동량이 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자신처럼 ‘범죄적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을 터. 해서 그는 이율배반적 자기 모순의 사람이었다.
충북 교단에 이런 사람이 학생을 가르친다며 현직 교사로 있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 수치심을 씻으려면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학생들에게 인성을 가르치기 전에 스스로의 인성을 살펴 배우고 명징하게 닦는 우리시대의 스승상을 정립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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