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무영문학상 수상자 권여선씨 인터뷰


 
서른 즈음이었나보다. 두 달 만에 써낸 장편소설은 그대로 등단작이 되어 그를 소설가의 길로 들게 했다. 그러나 이후 무명의 시간은 길었고, 삶에서 두 번째로 ‘사나웠던’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어디서도 청탁이 오지 않고, 글도 잘 써지지 않던 그 시절은 결국 7~8년의 공백기가 되어 남았다.
소설가 권여선(50·사진)씨는 그 긴 무명의 시기야말로 자신이 작가로서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고스란히 자양분이 되어 남은 절망과 체념의 시간들 덕분에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인생에서 갖는 의미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는 것. 그는 현재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 사이에 이름을 빛내고 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필치, 개성 있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는 그가 15회 무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권씨는 “부족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비자나무 숲’에 실린 단편들은 그 이전에 썼던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하며 쓴 소설들인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런 변화에 힘을 받을 것 같다”고 밝혔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소설집의 제목으로 선택한 단편소설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은 어떤 계기로 탄생한 작품인가.
“제가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는 편인데, 지인들과 제주도로 잠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비자림에 들렀는데, 무척 시원하고 청량하면서도 뭔가 애달프고 슬픈 기운이 감도는 숲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쭉 밀고나가 쓴 작품입니다.”
 
▷평소 이무영 선생, 또는 그의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제가 지식이 짧아 이무영 선생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농촌과 농민에 대해 애착이 깊었던 작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표작인 ‘제1과 제1장’ 같은 경우,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면서도 자신을 유례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있다면.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의식하는 것이 바뀝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오로지 문장만을 생각하고, 어떤 작품에서는 인물에 주로 집중하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독자를 의식합니다. 요즘엔 일반 독자가 아니라, ‘나’라는 독자를 주로 의식하고 쓰는 편입니다. 내가 읽고 싶은 작품을 쓰자, 그게 요즘 모토입니다.”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고등학교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시에 대한 재능이 부족함을 깨닫고 일찌감치 그만두었습니다. 소설가가 되자고 딱 결심한 적은 없습니다. 서른 즈음에 무턱대고 뭔가를 길게 쓰기 시작했는데 두 달 만에 1500매 가량의 원고를 썼습니다. 그게 저의 첫 장편소설이자 등단작이 되었습니다.”  
 
▷등단 이후 긴 무명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매우 사납게 보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사나웠던 시기가 20대 초반이었는데, 그 다음으로 사나웠던 시기가 아마 삼십대 중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마디로 아주 엉망인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체념을 하고 영영 소설을 못 쓰겠구나 하던 차에 극적으로 청탁을 받았고 다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말 아찔할 만큼 행복했습니다. 요즘 원고 마감에 시달릴 때면 다시 소설을 쓰던 그때의 아찔했던 행복감을 떠올리려고 애씁니다. 그러면 어떤 불평과 투정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매번 두렵고 설렙니다. 배를 띄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작품은 생각보다 매끄럽게 항해하고, 어떤 작품은 풍랑에 시달리고, 어떤 작품은 뜻하지 않게 난파된 채 떠돌기도 합니다. 일단 세상에 내보낸 이상 작품은 제 의도와 관리를 벗어나서 자기 운명을 삽니다. 그게 또 글 쓰는 가장 큰 재미이자 스릴이기도 합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단일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가능한 한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작품들을 쓰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제 소설 세계를 좀 넓혀보려는 안간힘이었다고 할까요? 그러니 독자들은 각기 좋은 대로 자기 몫을 챙겨 가면 될 것입니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품과 앞으로의 계획은. 
“올봄부터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쓸지 모르지만, 지금의 속도로 가능한 한 오래오래 쓰고 싶습니다.”
<조아라> 
 
 
- 약 력
△1965년 안동 출생.
△서울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단편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장편 ‘푸르른 틈새’, ‘레가토’ 발간.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이무영 문학상이란

권여선 소설집 ‘비자나무 숲(문학과지성사)’이 15회 무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비자나무 숲’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권여선 소설가가 2010년부터 2012년에 걸쳐 발표한 중·단편 7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무영문학상은 흙의 작가 이무영(李無影·1908~1960) 선생의 문학 혼과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주관하고 음성군이 후원해 지난 2000년 제정된 문학상이다. 수상자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15회 무영문학상은 2013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1년 동안 발표된 기성작가의 소설 중 중·장·단편에 관계없이 치열한 작가정신을 가진 역량 있는 작품을 선정했다. 심사는 김봉군·김주연·유종호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시상식은 4월 18일 오전 11시 무영 선생의 고향인 충북 음성 석인리 오리골 이무영 생가에서 열리는 21회 무영제 행사장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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