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여인의 정갈한 앞치마 위 세월의 무늬 새긴 단정한 소설

수상작으로 결정된 권여선씨의 ‘비자나무 숲’ 은 고운 여인의 정갈한 앞치마를 연상시키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소설집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힘들었던 세월의 무늬가 새겨져있고 그 시간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 혹은 망각의 숨은 고통이 숨쉬고 있다. 그리하여 소설 속 문장, “폭삭 늙고 싶은데 잘 늙지 않은” (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 단아한 여인의 땀맺힌 인고의 그림자가 문득문득 번득인다. 그러면서도 다난한 움직임의 시간들을 한 폭의 고요한 풍경화처럼 그려놓는 절제된 문장은 이 소설집의 훌륭한 미덕이다. 단편소설의 교본과도 같은 7편의 수록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그림들처럼, 혹은 사진첩처럼 소설미학의 전범을 구성함으로써 금년도 수상작으로 심사자들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른바 후일담 문학의 성격이 없지 않았던 권여선 소설은 이 소설집과 함께 바야흐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감이 있다. 소설 속 표현대로 그의 문학은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듯이”( ‘길 모퉁이’ ), 행동의 현장에서 추억의 반추와 성찰의 공간으로 이동해 있다. 그 이동은 소설의 품격을 형성하면서 감동을 일으키고 때로 아릿한 슬픔마저 자아낸다. 그것은 이즈음 많이 잊혀진 감이 있는 단편문학의 자존심이며 즐거움이다. 권씨의 이 책은 그것을 확인해준다.
 무영문학상은 이제 15회로 접어들었다. 기라성같은 한국의 대표작가들을 수상자들로 껴안아 온 이 상은 이무영이 그러했듯이 농촌소설의 범주를 넘어 현대사회의 모든 부분들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권여선씨의 수상을 축하하며 무영문학상의 더욱 역동적인 발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유종호  김주연  김봉군>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