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뚜껑을 열고 보니 역시나였다.

그동안 기업들이 임원 보수 총액 만을 공개해 오던 것이, 지난해 11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은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 공개가 처음 이뤄졌다. 이번 공개에서 등기임원들의 연봉은 서민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지난해 131일 법정구속돼 지금까지 구속상태인 최태원 SK회장이 4개 계열사로부터 301억원을 받아 1위를 기록했는데, 이를 두고 비난 여론이 크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웠음에도 일반 직원 연봉의 몇 백배를 챙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옥중 경영이 트랜드냐, 모럴 헤저드에 빠졌다는 등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비리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31억원을 받은 것이나, 1600억원대의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징역4년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도 오십보 백보. 기업은 적자의 늪에 빠졌는데 연봉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GS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GS건설은 지난해 9373억원의 적자를 내고도 경영자 허창수 회장에 17억원의 연봉을 챙겨줬다.

등기임원에 대한 연봉 첫 공개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하기위해서는 관련 법령의 재정비와 개정이 필수적이다. 애초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연봉 5억원 이상 받는 대기업 등기임원을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했지만, 여기엔 경영 성과 측정 기준과 보수 결정 주체 등에 대한 사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공개된 내용 또한 연봉 산출 근거에 대한 구체적인 적시없이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에둘러 비껴가고 있다. 그 사람그 만큼의 연봉을 받아야 했는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연봉 내역에 대한 당위성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 경영주체이면서도 비등기 임원 타이틀 뒤로 숨어버린 재벌 총수들의 연봉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연봉 공개 대상에서 비등기임원들은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 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는 이사를 말한다. 비등기이사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비등기이사는 의결권이 없다. 그런데 비등기임원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이서현 사장,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이명희 회장, 정애은 명예회장, 두산그룹의 박용곤 명예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이 기업 경영의 주요 의사 결정에 배제돼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책임은 피하고 실권은 장악한, 셈법 빠른 총수들의 행동들이다. 이번 연봉 첫 공개의 맹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상 서둘러 법과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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