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사회학박사)

지난 달 29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칠보산호텔에서 남북한 및 중국과 일본의 한인동포 여성단체 인사 40여명이 참석하여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해외여성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7) 할머니가 참석하여 피맺힌 증언을 하였고 남북한 및 해외 한인 여성들은 과거 일본의 만행과 그칠 줄 모르는 역사부정 망언들을 한 목소리로 강력하게 규탄했고 결의문 채택 등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하였다.

민간차원의 남북간 여성교류는 분단 46년만인 1991년에 남·북·일 여성들이 동경에서 만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의 화해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여성의 역할을 모색하였다. 남북 여성교류는 2000년 6.15선언 이후 민족공동행사시 여성 상봉모임의 형태로 진행되어오다가 2002년 10월 금강산에서 남북여성 700여명이 참가하여 ‘남북여성 통일대회’를 개최하였고, 이후에는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여성본부가 출범되면서 남북여성교류를 주도하다가 2008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전면 중단되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번에 남북 여성이 만난 것은 2007년 5월 이후 7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의지와도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여성계의 남북교류는 정치·체육·문화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되었지만 통일을 대비하여 함께 해결해야 할 남북한 여성의 공동의제를 합리적으로 발굴하고 논의하는 것은 통일의 물꼬를 트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적으로도 평화와 안보에 여성을 주류로 참여시키려는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0년 10월 「여성, 평화와 안보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32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안보리결의 1325호'는 여성·평화·안보에 대한 최초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으로 여성과 성인지적 관점을 평화과정의 모든 측면에 연결시키는 틀로 유엔 회원국들에게 ▷분쟁예방 및 분쟁 이후 재건 과정 등의 평화구축 관련 활동에 성인지 관점 통합, ▷분쟁해결 의사결정과정에 여성참여 확대, ▷분쟁지역 성폭력으로부터 여성 보호, ▷해외파견 평화유지군 대상 여성과 아동의 보호에 대한 특별교육 실시 등을 촉구하고 있다.

'안보리결의 1325호'는 여성을 단순한 분쟁의 희생자로서가 아니라 분쟁의 해결자로 인식해 평화와 안보 관련 정책결정과정에 여성참여를 명문화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으며, 이러한 안보리 결의는 유엔헌장 25조에 따라 유엔 구성원이 이 결의를 수락하고 이행할 의무를 부과하므로 국제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40여개 국가들은 이 결의안의 요구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해 국가별로 1325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였다. 우리나라는 국회에서 2012년 2월 <유엔안보리결의 1325호에 따른 국가행동계획 수립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켰으며, 이에 따라 정부도 외교부를 주무부처로 하여 여성가족부, 법무부, 국방부, 통일부, 안전행정부, 교육부, KOICA 등 정부기관들과 여성단체들이 민관 실무협의회를 구성하여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이며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는 나라이고, 공적개발원조(ODA)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무력분쟁 시 여성을 보호하고 평화와 안보에 여성의 참여와 역할을 강화하는 「안보리결의 1325호」에 따른 국가행동계획을 면밀하게 수립하고 철저하게 이행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국가나 개발원조 수원국가의 여성인권 보호와 성평등 실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위안부라는 심각한 여성인권 침해를 경험한 당사국으로서 1325 국가행동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통해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제고하고 무력분쟁 시 성폭력 피해자 예방과 보호에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올해 안에 우리 국민 모두와 국제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1325 국가행동계획이 반드시 수립되어 아직은 다소 생소한 「안보리결의 1325호」의 의미와 이행 현황이 속속들이 전파되고, 이를 계기로 평화·통일·안보 등 주요 국가정책 영역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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