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아침 뉴스는 흉흉했다. 계모의 의붓자식 학대 살해사건이 마음을 아프게 하더니 또 유아가 살해되어 길가 쓰레기봉투에 버려진 것이 발견되었다니 소름이 돋는다. 20대의 젊은 아빠가 게임에 빠져 두 살짜리 아이를 방치하고 굶어 죽였다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들의 시체를 종량제봉투에 넣어 1.5km 떨어진 쓰레기장에 유기했다는 것을 자백 받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 사회의 가장 약자는 어린아이들이다.
   칠곡이, 울산이 서리를 맞았다. 계모가 8살밖에 안 된 의붓자식을 때려서 죽였다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징역 10년과 15년을 선고한 형량이 적절치 않다고 생모와 고모, 시민단체의  엄마들이 ‘아동학대는 살인 죄’ ‘사형’ 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칠곡계모, 울산계모를 사형시키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들을 사형시킨다고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을 것인지 답답한 심정이다. 계모 사형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아동학대를 미리 예방하는 것이며 국가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 앞에 닥친 시급한 과제가 아닌가.
   ‘계모’ 라는 말은 ‘장화홍련전’ ‘콩쥐 팥쥐’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전래동화와 서양동화에서 나쁜 사람으로 우리에게 학습되고 각인되어 있다. 계모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니 제 자식같이 키우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다. 배 아파 낳은 자기자식도 미울 때가 많은데 실제로 남의 자식 키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아무리 잘해도 그 공이 무산되기 일쑤이다. 세상의 계모들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기 십상이니 무한한 인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아이를 발로 밟아 갈빗대 16개를 부러뜨렸고, 맞은 흔적이 15군데나 발견되었다니 인간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잔인함의 극치다. 거기다 자기의 죄를 12살짜리 언니에게 강요하여 뒤집어씌우기까지 했으니 하마터면 동생을 죽인 잔인한 언니로 남을 뻔 하지 않았는가.
  “소풍가고 싶다”는 말에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다니 정신병에 걸리지 않고야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이해할 수가 없다. 그 가슴의 밑바닥에는 미움이 가득 찼고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지 않았겠는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아이의 친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오히려 계모와 함께 범죄를 부인하고 반성의 기미도 없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계모만 아동학대를 한다고 볼 수 없다. 경기도 남양주의 미혼모가 22개월 된 아들이 계속 운다고 때려 숨지게 한 사건도 있다. 오히려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친부모가 79.7%이고 계부모는 3.6%라니 계모만을 나무랄 일은 아닌 것이다. 착한 계모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아동학대 같은 범죄는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화풀이가 대부분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면 화를 풀길 없어 자식을 학대하거나 동반자살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아이의 의사는 무시한 채 부모 마음대로 죽음의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되니 이것 또한 살인이 아닌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부모에게 종속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큰 문제다.
   한 해에 아동학대 사건은 6800건인데 비하여 아동보호기관은 50곳 밖에 되지 않는 다니 거의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불행하게도 이혼 가정이 늘고 재혼 가정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계모나 계부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다.
   계모 중에는 착하고 헌신적인 계모도 많다. 의붓자식을 자기자식 못지않게 사랑으로 키워내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식이 있는데도 불쌍한 아이를 입양해서 친자식처럼 훌륭하게 키워내는 어머니도 있는데 말이다. 이번 사건으로 계모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들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 짐작이가고도 남는다. 계모는 나쁜 사람이라는 의식이 고착화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아동학대로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은 2001년부터 2012년까지 10여년사이에 97명에 이르렀다. 이번 사건들을 보면 유치원교사의 신고도 먹혀들지 않았고, 계모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경찰의 대처는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가장 여리고 약한 어린이의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른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아동범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 엄마와 살아야 하지 않아요. 가정이 깨지는 걸 원치 않아 아빠에게는 말 할 수 없었어요.”
  12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가슴을 후벼 파듯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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