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수 길(논설위원, 소설가)

세상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모처럼의 여행길에 올라 마음이 부풀었던 너희. 그러나 지금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거나, 혹은 엎어진 선체의 격실에 갇혀 공포에 떨고 있을 너희, 너희에게 그런 참혹한 현실이 닥치기 전에 미리 막지 못한 어른들의 죄가 참으로 크다.

 미안하고 슬프고 괴로운 어른들의 마음을 어찌 전하고 무슨 말로 사죄를 해야 하는 건지 막막하구나. 또한 너희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부모와 선생님, 충격에 휩싸인 학우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하는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부디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붙들어 맬 수 없는 시간은 거침없이 흐르고, 거센 해류와 수중의 흐린 시야, 선체의 싸늘한 철판이 구조의 손길을 더디게 하니, 지켜보는 것 외에 도리가 없는 우리는, 치솟는 눈물을 참고 들뛰는 가슴을 두드릴 수밖에  없구나.

 절박한 위기에 안전 탈출유도는커녕 그릇 된 안내방송을 잘 지킨 탓에 오히려 사경에 몰린 너희, 그런 너희의 생환확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구나.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물을 가르고라도, 절망의 격실에 갇힌 너희를 덥석 업어오고 싶지만, 인간의 오만과 방심을 경계하심인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럴 능력을 주지 않으시는구나.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은혜로 너희가 다시 우리 앞에 돌아와 줄 것을 간구하고, 이미 생명줄을 놓친 너희의 명복을 빌 뿐이다. 너희의 안전을, 아니 생명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에 최선을 다했어야 할 일부 어른들이 안일과 방심, 책임회피로 너희를 그처럼 참변의 소용돌이에 몰아붙였으니, 이제 와서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자책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염치없는 어른들은 늘 그래 왔었다. 의무와 책임을 다 하고 규칙을 지켜라.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정신을 길러라. 너희에게 화려한 말들을 꽃비처럼 뿌린 어른들이, 이젠 너희 앞에 참회의 눈물을 뿌려야할 처지가 됐으니, 어른이라는 사실이 한 없이 부끄럽구나.

 공공의 책임을 맡은 어른들이 훔쳐먹고 우려먹고 속여먹고, 그래서 부실증축 부실운영 부실점검으로 참사를 빚어도, 못 된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위험 속에 너희를 방치한 것이니, 어찌 어른들의 죄가 가볍다 하고 무슨 염치로 너희에게 용서를 빌겠느냐?

 서해 훼리호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대학생 MT장 건물붕괴, 그 밖에 수다한 참사로 숱한 생명을 잃었어도 ‘재발방지’는 구두선에 그쳤다. 허욕과 안일, 부실과 무책임을 그냥 끌어안고 살아 온 어른들의 썩은 의식이 죄였다. 진작 그 썩은 의식들을 바다에 던졌더라면 너희의 아까운 생명을 바닷물에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건데, 때가 너무 늦었구나.

 위기 속에 너희를 버려두고, 제 몸 살길만 찾은 선장이나 선원들에게 비난과 원망, 분노를 퍼 부은 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너희, 이승을 떠나 당도할 천국에선 부디 부실 없고 위험 없는 안전한 생을 누리라 기도할 수밖에.....  

 그러나 이승을 떠나 먼 길에 올랐을지언정 너희는 외로워하지 마라. 세상의 어른들 모두가 너희를 버린 게 아니다. 무책임한 일부 어른들의 이기와 방심이 너희의 불행한 참사를 막지 못했을 뿐이다. 승객들 중에는 자신의 탈출을 미루고 너희 20여 명을 구조한 어른들도 계셨고, 나는 맨 마지막이라며 자기 구명대를 벗어주고 희생된 선원 박지영 언니도 있었다.

 
 침몰하는 선체 난간을 잡고 너희에게 구명대를 던져주며 침착하라 격려한 뒤에, 남은 제자들을 찾기 위해 물에 잠긴 선실로 다시 뛰어들었다가 영원히 못 보게 된 남윤철 선생님, 침수된 격실에서 너희를 구하고자 안간힘 쓰다가 천국동행이 되신 김초원 최혜정 선생님 등 마지막 순간까지 너희를 지키려던 여러 선생님들이 계시고, 가까스로 구조되었으나 너희를 살리지 못한 책임감 때문에 너희와 동행을 택하신 교감선생님, 모두 너희에 대한 사랑을 안고 너희의 목숨을 지키려던, 너희의 영원한 ‘쌤’들이시다. 그런가하면 입었던 구명대를 급우에게 벗어주고 다른 친구를 구하려 물속으로 뛰어 든 의로운 친구 정차웅군도 있었다.  

 너희의 부모님과 선생님과 학우들과 온 국민, 나아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너희의 참변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생환을 기도하고 있다. 너희를 구조하기 위해 항공기와 함정, 어선과 잠수부, 필요한 모든 걸 동원하고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모두가 너희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니 외로워하지 마라. 천국으로 간 너희는 행복하고, 아직 공포의 격실에 갇힌 너희는 부디 살아 돌아오라. 설령 너희에게 용서받지 못한대도, 세상의 모든 부모, 모든 어른들은 그래도 너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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