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의 주검을 보아야 이 비극이 끝날 것인가. 생각만 하면 먹먹한 가슴에 숨이 막혀온다. 세월호 참사 일주일째인 22일 오후 6시 현재 사망 112명 실종 190명 구조 174. 시간은 점점 더 흘러가고 학생들의 생존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침몰 당시 구조된 이들 이후 생존자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는 사실이 국민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과 같겠으련만, 국민들 모두는 너무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너무 큰 분노에 휩싸여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국민들이 제3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아이들을 내 아이들과 동일시 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그 슬픔을 제어하려 하지 않는 까닭은, 그 슬픔 나누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 아닐까.

세월호 선장의 비겁한 의무 포기버큰헤이드호는 1852년 남아프리카 희망봉 앞바다 암초에 부딪혀 좌초됐다. 구명보트 세척에 승선 가능 인원은 180여명, 그러나 그 배에는 군인과 가족 등 모두 638명이 타고 있었다. 당시 사령관 세튼 대령은 명령했다. ‘여자와 어린이부터 배에 태워라.’ 마지막 구명보트가 떠날 때까지 그들은 두 동강난 갑판 위에서 미동도 않은 채 명예로운 죽음을 맞았다. 그것이 버큰헤이드 정신이었고, 이후 이 정신은 선박사고 때 지켜야될 불문율이 됐다.
수백명의 생사가 달린 순간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자기들만 아는 비밀통로로 승객들의 목숨을 내던지고 탈출했다. 만약 승객들의 탈출을 진두지휘하며 선장 본연의 임무를 지켰다면, 탈출하라는 선장의 말 한마디만 있었다면, 선실 안에 있는 게 더 안전하다는 안내방송만 없었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지키지 않았다. 선원들 또한 선장을 도와 승객들의 생명을 지켜야 했음에도 자신들의 생명만 중한 줄 알았다. 그들 12명은 모두 생존했다.

오락가락안전행정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부처 이름까지 안행부로 바꾼 당국은 이번 참사에서 극명한 아마추어리즘을 드러냈다.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일사분란하게 지휘해야 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구조자와 실종자, 사망자 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락가락했다. 지휘본부로서 내려야 할 지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이제는 재난상황을 총괄 수습·지휘해야할 자신들의 의무를 포기하고 장례 총괄만 맡는 한심한 상황까지 갔다. 그 역할은 해수부쪽으로 넘어갔다.

국민들과 먼 그대 지도층 사람들
국민적 슬픔과 분노가 너무 깊고 큰데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행태는 국민 정서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제 역할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안행부. 그 부처의 송영철 국장은 20일 진도 팽목항 사망자 명단 앞에서 동행한 공무원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무엇을 기념하겠다는 것인가. 유가족들의 피눈물을 기념하자는 것인지, 참사현장 다녀갔다는 눈도장을 찍자는 것인지 지도층의 속내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황제 주차의 비아냥을 들었던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빈소 행차는 황제다웠다. 극심한 슬픔 속에 빠져있는 유가족에게 수행원 왈, “교육부 장관님 오십니다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장관님 오시니 슬픔 거두고 웃는 낯으로 극진히 영접하라는 것인가. 정말 어쩌란 말인가.
서울시장 경선에 나선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아들도 철딱서니 없는대열에 합류했다.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그 미개한 국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서울이라는 미개한 도시에서 그의 아버지가 시장으로 출마하려는 까닭은 무엇인가. 문명화된 신세계를 보여주기 위함일까. 그 철없는 아들의 눈엔 국민들이 미개한 것으로 보였다기 보다 미천한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슬픔도 힘이 된다희망의 싹 틔우자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번 참사를 겪으며 그런 분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유가족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기초수급대상자임을 알고 살아남은자녀들의 학교로 찾아가 도시락을 배달하는 안산시 공무원이 그렇고, 제자들을 지켜내지 못한 죄스러움에 제자들 뒤를 따른 단원고 교감의 사연은 또 얼마나 먹먹한가. 스물 둘 꽃다운 나이에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자신의 구명조끼까지 내어주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우며 너희를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한 승무원 고 박지영씨의 희생은 세월호 참사에서 세월가도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고귀한 뜻이다. 학생 20여명을 구출하고 가까스로 탈출한 승객 김홍경씨는 더 많은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청주 출신 고 남윤철 교사는 많은 학생들을 구하고 자신은 배에 남아 희생됐다. 더욱 가슴이 아려오는 건 남 교사의 부친이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의 아들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지었다는 것이다. 이타적인 아들의 성격상 의로움을 행하다 의롭게 죽을 것이라고 직감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진도로 간 부친은 아들의 시신 곁을 지키는 대신 유가족들의 슬픔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엔 그렇듯 가슴 따뜻한 바보들이 많다. 그 감동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슬픔을 힘으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절망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아직 생사조차 모르는 많은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슬픔도 힘이 될 수 있도록, 그 슬픔 딛고 희망의 싹 틔울 수 있도록 간절하게 소망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