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진영아, 우리 아파트 앞 화단에 만발한 철쭉꽃 행렬이 화사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봄날이다. 얼마 전에는 목련과 벚꽃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하더니 연달아 피어나는 봄꽃과 연두빛 새순이 좋은 계절임을 실감케 한다.

네가 사는 캐나다도 기온이 많이 올라가 한결 따뜻해졌다지? 젊은 네가 내복을 챙겨 입을 정도로 추운 곳이라더니 이제 살만하겠구나. 보통 캐나다의 봄은 우리나라 보다 늦게 찾아와 4월쯤 돼야 봄기운을 느낄 수 있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의 댐 공사 현장에서 늦은 시간까지 일하느라 고생이 많겠구나.

얼마 전에는 일이 있어 경주에 들렀는데 그곳의 상징인 천마총을 둘러보며 천년고도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왕릉이 모여 있는 그곳을 거닐며 화려했던 통일신라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었다.

네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다. 거기서 사온 엄마의 목걸이며 할머니께 드린 옥돌이며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네 아내인 요코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동안 경주에 몇 번 들렀다고 하던데 외국인들에게도 경주는 남다른 감회를 주는 곳인 것 같다.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김천, 직지사라는 절에 들렀는데 울긋불긋 핀 봄꽃들과 유서 깊은 고찰이 어우러지며 멋진 풍경을 연출했다. 절이 얼마나 크던지 그 큰 규모에 놀랐고 참하고 단아한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은 사찰이었다.

동행한 친구 한 사람은 사진에 조예가 깊은데 구석구석 사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더라. 그녀는 엄마가 절하는 모습을 여러 컷 찍어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을 보며 절할 때의 경건함을 평상시에도 잃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처에 봄나물이 지천하는 때라 들르는 식당마다 나물반찬이 골고루 나와 봄나물의 맛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길가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두릅과 취나물, 사찰에서 파는 민들레 조청을 사와 먹는 재미도 남다르더라.

진영아, 너 또한 뉴스를 통해 알고 있겠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세월호’라는 대형 여객선이 침몰해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시 단원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다수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아직도 실종자 수색이 진행 중이고 사망자수는 계속 늘어나 가족들의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여객선 탑승자 대부분이 십대인 고등학생들이라 그 충격이 더하다.

사고가 났음에도 선장을 포함함 선원들이 초기대응을 잘못해 더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큰 사고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대처를 못해 우리나라 위기관리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나 그 안타까움이 더 하다. 외신들도 이번 사고를 ‘후발 현대화의 한계와 취약성을 보여준 사고’ 혹은 ‘20년 전 사고들에서 한국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보도하며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지적했다. ‘우리의 몸은 현대에 살고 있으나 사고와 행동은 근대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들린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많은 사고가 났지만 이번처럼 많은 어린 생명들이 목숨을 잃은 적은 없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상심이 더 크다. 순식간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들이 앞으로 견뎌내야 할 고통의 무게 앞에 참담함마져 느낀다.

학생들의 구조를 돕다 의로운 죽음을 맞은 단원고 남모 교사는 엄마 아빠가 잘 아는 분 아들인데 빈소를 다녀온 아빠는 침통하게 차마 못 보겠더라는 말씀만 하시더라. 남교사의 아버지가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아들의 장례식을 지켜냈다는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구나.

그럼에도 수많은 온정의 손길이 속속 현장으로 모여들어 구조작업을 돕고 있다. 이천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들을 돕고 있고 오백 명이 넘는 민간잠수부들이 생업을 놓고 사고 해역으로 달려가 구조를 돕고 있다. 모쪼록 이번 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선진화하고 국민의식도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잘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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