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끈 떨어진 뒤웅박’ 이라는 말이 있다.

남편의 역마살 따라 파라구아이로 농업이민을 떠난 누나의 뱃속에서
미국으로 동반 밀입국한 조카딸은 벌써 26살.

가방 끈이 중학교에서 끊어진 뒤 별정우체국 교환실에서 울부짖다,
가난이 싫다며 시집으로 도망친 제 엄마의 미모를 빼닮았는데

꿈의 나라 미국에서도 벗지 못한 가난과 엎친 데 덮친 부모 이혼으로,
사춘기의 자신 속으로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뒤웅박에는 우묵한 방이 있다. 얼마나 깊은지 약물에 기대지 않으면
그 방을 한 발짝도 나설 수 없게 된 조카딸이 힘겨운 걸음을 추슬러 엄
마의 옛집을 찾았는데

그 방 밖에서 싱그럽게 빛나는 조카딸을 맞으며, 나는 문득 27년 전
에 이승을 떠난 아버지의 뒷소식이 궁금해진다.

아버지, 왜 거기 들어가 계세요? 제기랄! 거긴 아버지 방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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