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하

고갱씨!
당신을 만나려고 서울 시립 미술관에 갔어요
타이티에서의 당신 그림속에 빠져서 시간을 잊었답니다
늦가을 해 질 무렵의, 한바탕 비바람이 지나 갔네요
푸르스럼한 파스텔 톤의 서쪽 하늘이 열리고 은회색 자작나
무는 빈 가지만 남았군요
그렇지요,
마을엔 개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뼛속까지 적요로울때
저녁 산책을 가셔야지요
꽤 날씨가 쌀쌀해 졌나봐요
긴 코트에 목도리까지 두르고서 베레모도 눌러 썼네요
그래도 너무 멀리는 가지 마세요
“ 안녕하세요, 고갱씨” 하고 마을 끝집의 마당에서 농부의 아
낙이 근심어린 얼굴로 인사 하고 있잖아요
이 그림 앞에서 갑자기 당신을 두고 한, 반 고흐의 말이
생각 납니다
“ 그는 멀리서 올 사람, 그리고 멀리 갈 사람” 이라고요
고갱씨!
당신은 참, 그립고 쓸쓸한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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