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돈

흙을 밟으며 시간을 쪼갠다
흙을 밟으며 시간을 다듬는다

돌아보면
참 멀리도 왔다

한때는 흙을 떠나 멀리 가려고 하였지만
결국엔
흙으로 돌아와 흙을 밟는다

낙엽은 지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곁을 빙빙 돌며
기억 속의 문장을 꺼내어 까만 밑줄을 긋고 있었다

흙을 밟다가 의자에 앉는다
보이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형용사들이 내일로 말없이
걸어간다

잠시 시간과 떨어져
흙을 다시 밟는다

등이 굽은 노인 한 분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지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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