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흠 귀<한국건강관리협회 충북·세종지부 내과전문의>

가정과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30·40대 여성들의 건강이 사각지대에 놓였다.

● 남성보다 심한 철분 손실, 빈혈도 심해
남성은 대체로 암이나 심장병 등 심각한 질병으로 위협받으며 굵고 짧게 살아가는 반면, 여성은 관절염, 당뇨, 갑상선 질환을 비롯한 내분비 질환 등 비교적 병세는 가볍지만 오랜 시간 고통받는 병으로 인해 서서히 시들어 간다. 그런 면에서 여성에게 흔한 것이 빈혈이다. 빈혈은 혈액 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부족한 상태로, 신체 장기의 산소 부족과 에너지 고갈을 초래하게 된다.
빈혈의 근본 원인은 대개 적혈구의 원료라 할 수 있는 철분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남성은 철분 부족이 생길 수 있는 경우가 위장관 출혈이나 암 등으로 비교적 드물지만, 여성은 매월 생리로 인한 철분 손실이 크므로 빈혈이 될 가능성이 항상 높다. 30·40대 가임기 여성의 20%가 월경과다증으로 빈혈의 위험이 가중되고, 젊은 여성들은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4명 중 1명꼴로 빈혈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 류머티즘이 흔한 이유, 호르몬 때문?
류머티즘 내과를 찾는 환자의 80~90%는 여성이다. 다 호르몬 탓이다. 여성 호르몬은 염증 반응을 증가시키는 반면 남성 호르몬은 염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 여성이 관절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인공관절 수술을 3배 더 받는다. 평생 호르몬의 노예로 살아가는 게 여성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통증에 더 민감하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 바스대 의료진이 국제의학학술지 ‘통증(Pain)’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부에서 가하는 동일 조건의 자극에 대한 통증 반응 실험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통증 감지 시간이 빠르고 참는 시간은 짧았다. 연구진은 여성은 감성이 발달해 아픔을 빨리 느끼지만 남성은 통증을 일으키는 외부 자극에 신경이 집중돼 있어 통증을 덜 느낀다고 분석했다. 원시 사회부터 남성은 외부 적들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근성, 여성은 가족의 위험을 빨리 알리려는 본성이 내재해 있다는 뜻이다. 잘못된 돌봄·가사 노동이 류머티즘을 유발한다는 의견도 있다. 집안에서 걸레질을 하거나 음식을 만들 때 오래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면 류머티즘 관절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갑상선암, 자궁경부암은 여성의 주요 질환
갑상선암으로 한 해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는 4만 6,549명이다. 국내 최대 암 환자 그룹이 됐다. 초음파로 갑상선을 검사하는 경우가 늘면서 발견하는 암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중 약 80%가 여성이다. 40대 여성들이 은근히 많다. 유방암 환자는 2008년 2만명에서 3년 만에 2만6000여 명으로 늘었다. 한국의 유방암은 40대에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유방암은 40대부터 철저히 조기 검진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60·70대로 나이가 들수록 유방암 발생률이 높다.
자궁경부암은 국내에서 한 해 3800~4000명 정도 걸린다. 주로 성생활이 활발한 30대에 HPV에 감염돼 40대 중후반에 생기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60대에 잘 생긴다. 하지만 요즘은 성관계 시작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미혼 여성의 성생활도 활발해 30대 초반에도 자궁경부암 발생이 늘고 있다.
2006년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여성 4,033명 중 34세 이하는 8.8%(357명)였다. 4년 뒤인 2010년에는 자궁경부암 진단자 3,857명 중 34세 이하가 10%(385명)로 늘었다. 전체 암 발생 수는 줄었는데 젊은 환자는 더 늘어난 것이다. 자궁경부암은 정기 암 검진을 받으면 조기에 발견해서 완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암인데도, 젊은 여성은 암이 커지고 나서 뒤늦게 발견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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