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용 옥천경찰서 이원파출소

오늘도 어머니께서 끊이는 된장찌개 소리에 눈을 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 매일 겪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우리를 데리고 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맞벌이 한다는 핑계로 손자 좀 잠깐 봐달라고 모시고 온지 벌써 올해로 15년째다. 처음엔 우리 부부가 편하게 살려고 모시고 왔지만 어른과 살다보니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내 나이 마흔 셋.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겼음에도 어린애 취급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여느 어머니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구부러지시고 기력이 달려서 그런지 잔소리가 갈수록 늘어나는 분위기다. 술을 조금씩 마시고 다니라거나 운전 조심하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잔소리로 조차도 들리지 않을 정도다.
자식 잘되라고 하는 말씀 인줄 알면서도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신경질이 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며 어머니께 대꾸한마디 하지 않으며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한평생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아 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다.
옛말에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나는 요번 정기 인사에서 승진을 했다. 하지만 승진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타 경찰서로 전출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아 한동안 마음이 심란했다.
이웃 경찰서라고는 하지만 40여 년간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내심 걱정이 앞섰다.
얼마 전 나는 옥천경찰서로 전입을 했다. 신고식을 하기 위해 경찰서로 들어가는 내내 직원들도 낯설어 보였고 건물도 노후화 돼 있어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는 동안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먼저 반겨주며 친절하게 인사를 해줘 조금은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이어지는 전입신고식에서 이상수 옥천경찰서장님의 훈시를 듣고서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옥천경찰서에서는 존중문화 확산의 일환으로 ‘주민을 내 부모 내 형제처럼’섬기며, 직원들간 배려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자식을 의지하듯, 범죄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주민입장에서는 믿을 곳은 경찰뿐일 것이다. 치안의 수요자인 주민들에게 당연히 친절하게 해야 하는 것이 세상사 이치이거늘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서장님 훈시를 듣는 내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서 그런지 한동안 맘이 찡했다.
묘목의 고장 이원파출소에 근무한지 벌써 한 달 정도 흘러가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면서 나를 포함한 우리 파출소 직원들이 하루라도 그르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는 치안사랑방을 방문하고 이 시대 꿈나무들의 공간인 학교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치안 사랑방이나 학교를 가서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잠깐이지만 어르신들 말동무나 해드리고 학생들과 잡담이나 하는 수준이다. 어르신들은 그것이 그렇게도 고마운지 갈 때마다 너무나 반겨주고 뒤 돌아서는 내손을 잡아주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떠올라 자꾸만 찾게 된다.
옥천경찰서 관내 모든 파출소 입구에는 출퇴근 시간에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안내판이 놓여 있다. 주민을 내부모 내형제처럼 이라는 안내 문구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하루 주민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자는 다짐을 하는 것이고, 퇴근시간에는 정말로 그렇게 행동했는지 스스로를 반성해 보자는 취지이다.
주민을 가족처럼 존중하라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젠 매서운 겨울의 끝자락을 지나 묘목의 고장 이원면에도 완연한 봄기운이 감돈다.
내 맘속에도 낯설음이 차츰 사라지는걸 보니 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만은 애들이 좋아하는 통닭보다 어머니 주름살처럼 야들야들한 풀빵을 사다드리며 밤새 어머니 잔소리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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