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나는 공간 (5) 21세기문학관


“입소에서부터 퇴소까지 21세기문학관에서의 생활은 단 하루도 버리고 싶거나, 잊어버리고 싶은 날이 없었습니다. 멀리서 들리던 바람소리, 밤하늘에 떠 있던 별들, 새벽마다 울어대던 닭장 속의 닭들, 그리고 문학관 식구들과 밤새는 줄 모르고 나눴던 그 숱한 대화……. 치열하게 썼고, 충분히 즐겼고, 넘치게 행복했습니다.” (아동문학가 김선희씨의 입주후기 중에서)

충북 증평군 증평읍 내성리. 유난히도 시간이 더디 가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오롯이 문인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 문학창작집필공간인 ‘21세기문학관’이 그곳. 문인들이 복잡한 세상사를 덜어내고 잠시 머물며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전자회로 관련 부품 생산 업체인 ㈜디엔피 코퍼레이션 김상철 회장이 건립, 지난해 2월부터 입주 작가를 받고 숙식과 각종 편의시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김 회장의 부친인 고 김준성 이수화학 명예회장은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경제계의 거목으로 소설가이기도 했다. 6년 전 작고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문학전문계간지 ‘21세기 문학’을 발간해 온 김 회장은 문인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고민하던 중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안으로 증평공장 부지에 작가들을 위한 창작촌을 짓기에 이른다.
건물은 전체면적 440㎡(133평), 지상 2층으로 이루어진다. 1층에는 24시간 이용 가능한 세미나실, 간단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탕비실, 3000여권의 서적을 갖춘 독서실, 김준성 기념관 등이 있으며 휴게실, 탁구대, 세탁실 등도 갖추고 있다. 2층에는 7곳의 집필실이 있어 7명의 작가들이 3개월씩 머무르고 있다. 지난 2월부터 4월까지는 5기인 이태관·권여선·한현주·김이듬·윤성희·은희경·강연하씨가 이곳을 다녀갔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작가들만 34명에 달한다.
불과 1년 3개월 남짓 된 공간이지만 작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경쟁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5기 때에는 3대 1에 달했을 정도. 전국에 문학인을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강원 원주 토지문화관,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전남 담양 글을낳는집 등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보니 새로운 창작 공간은 찾는 작가들의 발길이 모여 드는 것이다.
작가들이 이곳에서 제공 받는 것은 따뜻한 잠자리와 하루 세끼의 맛있는 밥 만은 아니다. 낯선 공간이 주는 생경한 느낌, 전원 생활을 하며 온 몸으로 맞이해 본 자연, 책으로만 접했던 다른 작가들과 만나 함께 생활하며 경험한 잊지 못할 추억들도 차곡차곡 쟁여간다.


21세기문학관 5기 입주작가 김이듬·한현주·윤성희·권여선·이태관씨와 김상철 회장, 은희경씨.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5기 작가인 소설가 윤성희씨는 “버스를 타고 자주 읍내에 나가곤 했다. 자주 나가다 보니 어느 찻집이 맛있고 장날이 언제인지까지 알게 됐다”며 “아마도 언젠가 내 소설 속에 이런 분위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창작실에 오는 것은 삶을 단순한 곳으로 옮기는 듯한 느낌이다. 내 자신을 다른 것에 휩쓸리지 않게 만든다”며 “창작촌에서는 작가들이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힘을 내도록 가능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인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다른 작가들과 만나 접촉하는 경험은 매우 중요한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건물 주위로는 작은 정원과 텃밭이 조성돼 산책을 하거나 농산물을 수확할 수도 있다.
시인 김이듬씨는 “그동안 만나봤으면 했던 다른 작가 6명과 함께 석 달을 보낼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작가들과 이렇게 매일 같이 식사하고 산책하는 것은 하기 어려운 경험”이라며 “서재에 좋은 책이 많아 조용히 책을 많이 읽기도 했다”고 말했다.
21세기문학관에서는 지난해 5월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이옥수 작가 초청 문학교실’을 열기도 했다. 3기 박선욱 작가가 강연한 ‘21세기 문학관 입주작가 강연회(10월)’ 행사를 개최하고, 입주 작가와 증평문인협회 회원의 교류를 위해 ‘문학인의 밤(11월)’ 행사를 갖기도 했다. 올해는 이외에도 ‘군민과 함께하는 열린 문학 강연’, ‘귀뚜라미 낭독회’, ‘입주작가 작품 발표회’ 등을 열어 도민들이 입주 작가들을 통해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내년에는 문학관 3층을 증축해 현재 7실에서 10실로 집필실을 확장할 예정이다.
21세기문학관 기획 홍보 담당인 장영철씨는 “작가들이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머물다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며 “6기부터는 유명 작가보다는 창작에 대한 의욕은 있지만 여건이 어려운 신진작가를 위주로 선정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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