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무

세상이 쓸쓸해서 비가 내립니다
외로운 마을을 향해 함박눈은 쌓입니다
고독한 당신을 위해 옷깃을 흔드는 바람이 있습니다
가랑잎도 일부러 당신의 뺨 위를 스치고 떨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산다는 일이 명치끝에 와 달아오를 때
반짝이는 나뭇잎 사이로 슬픔이 턱을 고이고 쳐다봅니다
흐르면서 비로소 제 살 도려내는 강바닥도 보입니다
글쎄요, 그쯤해서 그리움도 근력이 붙어 어떻게든 길
을 내는 것일까요
먼저 나와 비를 맞던 상처 받은 꽃 한 송이
들춰질까봐 감추고 망설이던 비밀한 꽃술을 몰래 열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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