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무

흐린 겨울 날
새하얀 눈송이들이
제각기 지상으로 몸을 날린다.

새삼 청정하기만 한 천상에서
멀미를 하던 눈송이들이
단호히 하강을 결심한 듯.

어두운 마을의 골목을 돌아
어디 개골창에 박힌 쥐구멍이나
마른 수숫대 서걱대는 들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몸을 낮춘다.

천상을 떠나 비로소
표정이 밝아진 눈송이들만이
가파르고 곤고해진 지상을 향해

몸을 던져 순절하는 것일까.
때 절은 세상의 겨울 한복판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진 눈송이들이
다투어 몸을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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