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지역 담당 국장

제복(制服)은 명예이면서 또 책임이다.
때로는 극단적 희생을 자청하고 무한 책임의 구체적 상징이어서 제복의 명예가 더욱 빛난다.
제복의 3대 요소 가운데 실용성이나 장식성에 앞서 사회성이 가장 중시되는 것도 국민 일반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군인, 경찰과 해경, 소방공무원 등의 제복이 대표적인 사례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다.
여객기의 기장과 승무원, 여객선 선장과 승무원이 다를 리 없다.
이들 각 직역의 제복은 그 자체가 안전을 의미하고 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거꾸로였다.
16일 오전 9시46분, 두 번째 구조정으로 탈출하던 그의 사각팬티 차림은 무책임에 대한 분노를 넘어 연민을 자아낼 지경이다.
제복 차림이었어도 400명이 넘는 승객의 안전을 팽개친 채 자신만이 살자고, 추한 모습으로 배를 버리고 탈출길에 오를 수 있었을까?
전원 탈출한 선박직 15명도 모두 제복을 입지 않았다.
사무장·매니저·조리요원 등 운항에 관여하지 않은 승무원 15명 가운데 다행히 목숨을 건진 5명은 구조당시 제복차림으로 숭무원들과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침몰 직전 5층 조타실에 모여 있던 기관부원 7명은 선미 쪽에 위치한 3층 기관실로 내려와 10분 만에 구조정에 올라탔고 이어 나머지 승무원들도 두번째로 도착한 구조정에 올라탔다.
이처럼 선장 등 선박직원들이 제복을 입지 않은 것은 승객들을 두고 먼저 탈출한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조타실에서 기관실까지 내려오는 와중에 이들은 승객들을 구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고 구조가 쉬운 통로에 모여 있다가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정에 올라탄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에게 극단적 희생과 무한책임은 고사하고라도 최소한의 예의(?)가 있었다면, 제복에 대한 조그마한 존중감이 있었다면 전 국민이 9일 오전 현재 사망자수 273명, 실종자 31명이라는 집계를 보며 슬픔을 함께하는 참담한 현실은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는 크루즈에서는 선장과의 포토타임이 있다.
그것도 돈을 내면서 찍는다.
정복을 입은 선장과 함께 사진 찍는 것을 그들은 영광으로 여긴다.
그만큼 선장이라는 지위가 영예로운 자리임을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은 사실상 타이타닉호 참사 102주년이다.
1912년 4월11일 승객 2200명을 태우고 항해를 시작한 지 4일 만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 당시 탑승객 1514명이 숨졌고, 410명이 생존한 가운데 여성은 75%, 아이는 50%의 생존율을 보인 반면 남성의 생존율은 17%에 불과했다.
타이타닉호 선장이었던 에드워드 존 스미스는 승객 중에서 어린이, 여자, 남자 순으로 탈출토록 했고, 총으로 공포를 쏘면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게 했으며, 배와 운명을 함께 하는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보였다.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그의 고향인 영국 리치필드에서는 배와 운명을 함께한 스미스 선장의 동상을 세우고 동판에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그의 마지막 말을 새겼다.
반면 세월호 이 선장과 같은 행동을 보인 좌초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는 2012년 1월 이탈리아 해안에서 승객 4229명을 태우고 가다 암초에 부딪치자 배에 남은 승객 300여 명을 버리고 도망쳐, 승객 32명이 사망, 직무유기죄를 적용받아 승객 1인당 약 8년형씩 도합 269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다.
16일 세월호가 침몰해 참사로 이어지기까지 층층의 부조리와 비정상이 겹쳤지만, 해경(海警)의 초도 대응 실패는 선장·선원의 버금갈 만큼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분석한 승객 카톡을 비교하면 목포해경 경비정이 처음 도착한 오전 9시30분에서 단원고 학생이 마지막 메시지를 보낸 10시17분까지 47분이 걸렸다.
카톡은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방송은 안나와요’라는 내용이었고, 그 47분 동안 해경 구조대원이 선내 직입(直入)해 승객 탈출을 돕는 시도라도 했더라면 희생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선원부터 먼저 도운 해경이다.
500명 가까이 승선한 대형 여객선의 텅 빈 갑판을 보면서 아무도 선실로 들어가지 않아 마지막 기회를 ‘통한(痛恨)의 47분’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창 밖으로 도착한 해경을 보고 안심했을 학생들의 비명(非命)은 그대로 해경 죄책이다.
아직 선실 상당 부분이 물 위에 있는 상황인데 깔릴 수 있어 진입하지 못했다니, 국민 생명 보호에 앞장 선 의로운 제복은 없었다.
전남 소방본부가 첫 신고를 받은 8시52분 이후 마지막 카톡까지 1시간25분, 대한민국 군·경의 비상 역량을 동원하고도 남을 그 시간대를 그렇게 허비한 것이다.
선장·선원을 용서할 수 없듯이, 해경의 죄책 또한 그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할 지경이다.
이어진 5월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직후 “차내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믿지 못하고 차에서 뛰어내린 승객들,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만 믿었다가 참변을 당한 ‘세월호 학습효과’가 작용한 결과였다.
열차에서 빠져나온 일부 승객은 “승무원의 방송을 믿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우리 사회의 ‘제복’은 사람들의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충주/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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