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복(흥덕새마을금고 이사장)

 우리는 예술이 우리 삶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 이유는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경험은 구체적 실용성에 의해 결정되는 데 반하여, 예술적 경험은 추상적이고 비실용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술적 경험은 유기적 종합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즉시 지식으로 연결되는 경험이라기보다 특별한 감성적 질서를 느끼게 하는 독특한 경험에 기반 한다.

 이러한 예술적 경험은 인간이 무의한 자연과 살아있음을 전제로, 구상 비구상의 초월적 관계를 설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특수한 관계로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얻어진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인간 삶을 대별하는 충족감과 생명력이 숨어있다. 한 예술작품의 가치는 얼마나 강하고 절실하게 새로운 질서를 경험하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철학이나 과학이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준다. 예술은 회화로 치면 구상화다. 개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표현이다.

 예술은 상상의 세계를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하고, 과거의 경직된 관념의 틀을 깨뜨려 그 관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게 한다. 그것은 무의식적 차원의 체험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예술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열어준다. 그래서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까닭이다.

 예술의 주요한 기능중 하나는 가능세계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이미 있는 세계, 이미 생각하고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무형의 세계, 즉 다른 관점을 제안하거나 제시하는 것이 예술을 예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능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의 본질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며 부단히 이를 추구해 가는 과정이다.

 이와 같이 새로움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비판되거나 혹은, 부정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예술은 내재적이거나 초월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것은 부단하게 이미 있는 것, 생각된 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데서 오는 상징적 힘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해방적이고 개방스러우며 진취적 사고가 덧입혀 지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활동 속에서 우리는 새삼 우리의 자유로움과 관조적 삶을 재확인하게 되며 더 나아가, 예술 행위를 통해 과거로부터 벗어나 미래를 위해 부단한 창조적 활동을 지속해 가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에 대한 분류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로 구별되어진다. 순수예술은 행위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작품이 보여주고 있듯, 현실·비현실에 대한 표현과 가치의 단순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행위나 작품의 가치를 가격이라는 상업적 기준에 의거 평가하는데서 비롯된다. 시대마다 정신이나 세태 등,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데, 이는 예술의 사회성 투영인 동시에 비판이며, 새로운 예술 사회로 가는 문이 기도하다. 이런 관점에서 순수와 비순수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 할 수도 있다.

 사회가 어려움에 처할수록 예술에 대한 필요성은 커진다. 상처 나고 갈라진 인간의 심성이나 감각을, 예술을 통해 치유하거나 보듬는 것이 오늘날 예술이 추구하고 지향해 가야하는 본연의 역할이자 존재론적 이유다.

 


 현대인은 늘 시간에 쫒기고 무한 경쟁의 상황에 내몰린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는 물론, 크고 작은 병마에 시달린다. 특히 사회적 파장이 큰 사고의 경우 대단히 집단적 형태로 나타난다. 아무리 인류가 첨단 의료장비를 발명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 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노력만으로 모든 형태의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는 난망할 수밖에 없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상업성 높은 예술이 판을 치는 요즈음이다. 난파선처럼 부서져 내린 가슴을 부여안고 희망의 종소리가 그리워지는 잔인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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