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

해가, 묻히듯
갓 익은 복숭앗빛 산 뒤로 넘어간다

하얀 마당의 뒷장을 침 묻혀 넘기면
참 멀리까지 갔다 오는 저 건너편 나비

무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족보를 건네받는다

이런 여름날, 칼 같은 지느러미가 지나가는 마당
급하고 미끄러운 슬픔들의 어미가 선잠에 들 때까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제 자신의 바닥까지 휘어진
생의 화장을 고치는 노련한 산그늘

콩밭에 나비 접근하듯
할아버지 아버지 차례로 무릎을 안고
독방 구덩이로 빨려 들어간 참이다

그림자빛 꽃 가까이 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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