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도 반이 다 흘러갔다. 산하는 여느 해처럼 신록으로 번져가고 하얀 이팝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카시 꽃도 벙글어 향기가 숲을 덮는다. 영산홍이며 철쭉 같은 갖가지 꽃들이 화려하게 피건만 유난히 흰 꽃들에 눈이 가고 소복을 한 듯 슬프게만 보인다.

   한 달 동안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자식을 목 놓아 부르고 있을 죄 없는 어미들의 가슴을 헤아리다 보면 눈물 마를 날이 없는 5월이었다. 어린이 날이면 풍선을 둥둥 띄우며 ‘날아라 새들아’ 를 힘차게 부르던 아이들의 제비 새끼 같은 입도 다문 채 시무룩하기만 하다. 모든 행사들은 취소되어 침묵이 흘렀으며, 모두들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다. 색깔 있는 옷을 입는 것도 죄스러워 무채색 옷만 입었다.

   어버이 날 자식들이 달아준 빨간 카네이션도 슬쩍 내려놓았다. 마음만이라도 가슴이 까맣게 탄 어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5월이 크게 생채기를 입고 앓아누웠으니 푸르고 싱싱하던 제자리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슴이 답답하고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여기에 가도, 저기에 가도 혀를 끌끌 차는 이들로 우울할 뿐이다. 세월호 인양은 몇 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른다니 온 국민이 언제까지 바다만 바라보아야 한단 말인가.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꼴불견 선장의 모습이 민망하여  외면하건만 시도 때도 없이 TV 화면을 채운다.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 참으로 원망스럽다. 어린애들만도 못한 그도 지금쯤 시간을 되돌리고 싶겠지만 시간은 앞으로만 달려간다. 사형이 확정될 것 같다니 어차피 죽을 목숨, 승객들을 구해내고 장렬하게 목숨을 바쳤다면 영웅이 되지 않았겠는가. 가슴을 칠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만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세월호 사고로 숨진 승무원 박지영(22·여), 김기웅(28), 정현선(28·여)씨 등 3명을 의사자로 인정했다고 한다. 박지영씨는 세월호 침몰 당시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돕다가 정작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박씨는 구명조끼가 부족해지자 자신이 입고 있던 것을 여학생에게 건네주었다. 걱정하는 여학생에게 “나는 너희들 다 구조하고 나갈 거야.”라고 대답했다니 자기 목숨을 다른 이의 목숨과 바꾼 세상에 가장 값지고 의로운 죽음이었다.

   결혼을 앞둔 사이였던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기웅씨와 사무직 승무원 정현선씨도 사고 당시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숨졌다고 한다. 나이가 아깝다. 연인사이라니 한참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고 꿈에 부풀 때가 아닌가. 이런 젊은이 들이 있는 한 희망의 싹은 보인다.

  이번 사고로 대한민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무원들의 안일과 관피아, 해피아, 줄줄이 고구마 줄기처럼 달려 나오는 비리와 부패가 어디에서 멈출 것인지 걱정스럽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니 아이들에게 부끄러워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이제 울음을 그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피땀으로 일구어 온 나라를, 사회와 가정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큰일을 당한 사람들을 보듬어 안고 함께 가야 한다. 아까운 목숨들의 영령을 위로하며 살아남은 슬픈 사람들이 치유될 때까지 국가는 책임을 져야하고 정치권의 싸움질은 제발 멈추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 수준의 안전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며 가칭 ‘국가안전처’ 를 신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보다 먼저 공무원들의 정신 개조가 필요하다. 무사안일주의와 안전 불감증을 고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신발 끈을 다시매고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유치원에서부터 배운 것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국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말이다. 먼저 인간생명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은 시스템을 점검 또 점검해보고 책임을 질 수 있는 프로 정신을 발휘하여 적당히를 버리고 원칙을, 기본을 지켜주기를 간곡히 부탁해 본다.

  눈물 젖은 5월이 눈물을 닦고 다시 싱그러운 계절의 여왕으로 자리 잡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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