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품이 질이나 양에 있어 예년에 못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았다. 요즈음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여러 문제점이 다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 남의 시를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연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알지 못한다. 시를 읽는 가운데 좋은 시를 읽고 감동하고 이어 시를 쓰게 되는 것이 흔히 있는 시수업의 순서인데, 이것이 다 생략된 채 창작교실 같은 데서 기계적으로 시 쓰는 법을 익혀 억지로 시를 만들다 보니까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가 싶다. 한편 표현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시를 쓰겠다는 사람보다 말의 맛에 빠져 시를 쓰겠다는 사람에 더 신뢰를 둔다는 한 외국 시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같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으로 뽑을 만한 시는 여러 편이 되었다. '메리제인'(정수지)은 궁상과 청승이 없이 경쾌하고 밝아 좋았다. 더듬거리고 우물거리는 대목도 없이 발빠르고 날렵하다. 휘파람이라도 불며 환한 대낮에 꽃길을 가는 느낌을 주는 시들이다. 다른 시의 성적인 이미지들도 칙칙하고 찐득어리는 대신 수채화처럼 곱다. 한데 작품의 편차가 심하다. '그 겨울날엔'(고봉국)은 특이한 분위기와 정서를 잘 그려낸 아름다운 시다. "쓸쓸함과 낭만이 너무나도 서글퍼", 또는 "쓸쓸함과 낭만이 떨어져 내린 자리" 같은 치기어린 거슬리는 표현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거울'(라한희)은 삶의 의미 따위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상당한 수준으로 정리가 되어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데 이상하게 머리로 쓴 시라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너무 큰 얘기를 하려는 중압감을 벗어버리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겨울, 미술관'(이상은)은 감각이 모던하고 신선하여, 시를 읽는 재미를 한껏 맛보게 해준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면서도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발상이 상식적이거나 평이하지 않은 것도 이 시의 좋은 점이다. 같은 작자의 '너에게'는 뛰어난 사랑 시로, 말을 다룸에 있어 상당한 수준임을 짐작케 한다. 토의 끝에 심사자들은 이 네 응모자의 시 중에서 이상은의 '겨울 미술관'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유종호 문학평론가, 신경림 시인)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