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사회학박사)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마음속에 담아놨던 스승님의 은혜를 이날만큼은 꺼내어 맘껏 표현해 볼 수 있는 날이다. 올해 스승의 날을 보내며 제일 먼저 생각났던 선생님은 어린 제자들과 함께 세월호 사고를 당한 안산고 선생님들이셨다. 부정, 부패, 부조리가 판을 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여전히 우리 선생님들은 제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다가 끝내 목숨을 잃거나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큰 고통을 안고 제자들을 보듬고 계시다.

이번 사고로 대한민국의 선생님들은 교단에 서기가 몹시 곤혹스럽다. 학생들이 겪는 불안과 원망을 교육현장에서 매일매일 감수해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나쁜 어른들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들에 대표로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하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비뚤어진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수업을 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도덕과 가치를 일러주기가 너무 힘들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선생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처럼 원래가 스승의 길은 그렇게 애가 타고 힘이 드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통해 보여주신 안산고 선생님들의 가슴 저린 제자 사랑은 너무나 기막힌 사고를 당한 학생들과 부모님들은 물론 절망과 비통에 빠진 모든 국민들의 아픈 마음에 한 가닥 위안의 불씨가 되어주셨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선생님은 언제나 선생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께 한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스승의 날’의 유래는 1958년부터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현직 선생님과 병중이시거나 퇴직하신 선생님들을 위문하는 봉사활동으로 시작되었고, 1963년 RCY 충남학생협의회에서  충남도내 '은사의 날'을 9월21일로 정하면서 그 해 개최된 제12차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은사의 날'을 5월 24일로 정하여 전국적으로 기념하기로 했다. 다음해인 1964년 제13차 중앙협의회에서 '은사의 날'을 '스승의 날'로 바꾸고 날짜도 5월 26일로 변경하며 '스승의 날' 제정취지문을 작성 발표함으로써 제1회 스승의 날이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에 의해 기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승의 날’은 1965년 제14차 중앙협의회에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날짜를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

1964년 5월 16일 청소년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에서 결의된 ‘스승의 날’ 제정 취지문은 50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시사되는 바가 매우 커서 원문을 옮겨 적어본다.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받들며 청소년들이 평소에 소홀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불러 일으켜 따뜻한 애정과 깊은 신뢰로써 선생님과 학생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회복함으로서 사제의 윤리를 바로잡고 참된 학풍을 일으키며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담당한 선생님들의 노고를 바로 인식하고 존경하는 기풍을 길러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는 윤리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이「스승의 날」을 정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제자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시다. 이제 갓 어린이 집에 아장아장 들어온 어린 아이가 엄마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울고불고 다 토해내는 것을 거리낌 없이 두 손으로 받아내시는 어린이집 선생님, 교내 독창대회 안 나간다고 버티는 노래에 소질 있는 담임반 아이를 구슬리다 못해 회초리까지 드시는 초등학교 선생님, 왕따 당하는 학생을 위해 주말에 반 전체 학생을 데리고 엠티를 주선하시는 중학교 선생님, 한명이라도 더 원하는 대학에 보내려고 학생들보다도 일찍 출근해서 아침자습을 독려하고 점심시간까지 쪼개서 담임 반 학생들을 살피시는 고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바둑이나 골프는 근처에도 안가보고 학기가 끝날 때 마다 강의 노트를 세단기로 없애버리시는 대학교 선생님. 이런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출판ㆍ교육기업인 피어슨그룹이 전 세계 주요 4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 글로벌 인지능력ㆍ학업성취 지수’에서 비록 효율적인 교육시스템과 타고난 영리함보다 노력을 칭찬하는 문화의 결합에서 비롯된 암기식 교육이라는 비판은 들었지만 최고점인 1.30을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옛 부터 어느 나라에서나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뜻인데 인적자원밖에 없어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그 의미가 더 절실하다.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백년지대계를 수행하는 우리 선생님들의 책임과 사명감에 더 머리가 숙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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