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에 대한 사과 담화문을 발표한 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고심끝에 찾은 답이 책임총리제였다. 그리고 그 막중한역할을 감당할 인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꼽았다.

여권은 물론 국민들과 야권까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세월호 정국으로 나라의 기본부터 처참하게 무너진 현실에서, 안씨가 대통령 독단의 권력을 분할하고 헌법에 보장된 책임총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과 국민의 안위를 맡겨볼만한 인물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소신과 강단, 청렴 이미지가 덧씌워져 국민 검사라는 별칭이 자랑스럽게 붙여져 있었고,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장이 되면서 책임총리제를 성안했던 이력이 있었다.

 

5개월 동안 16억원 벌어들여

여기까지가 그에게는, 무난히 청문회를 통과하여 총리로서의 명예까지 누리는 해피 엔딩을 꿈꾸도록 허락된 시간이었다. 상황이 반전돼 부끄러운 그의 민낯이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안씨는 지난해 7월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연 뒤 돈을 벌었다. 변호사가 돈 버는 일이야 당연지사. 그런데 액수가 문제다. 5개월 동안 그가 벌어들인 액수가 무려 16억원에 달한다. 하루에 1000만원 정도를 번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볼 때 상상도 못할 금액이다.

변호사 개업 때 1년 이상 근무한 곳에서 사건을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도록 규정한 전관예우 금지법으로 보면 위법한 사실은 아니다. 그래서 법대로를 따지는 그가 조금 억울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법 감정은 아니다. 1년이 지났다 해서 위세 높은 대법관의 전력이 말소되는 것도 아니고, 휘하에 있었던 법조인들이 모두 옷을 벗어버린 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그에게 전관예우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학연과 지연, 혈연을 통해 밀어주고 당겨주는 것을 관행처럼 여겨왔었기 때문이다. 국민 검사라는 애칭까지 붙여주었던 국민들은 그때문에 전관예우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에게 더욱 큰 질책을 보내는 것이다.

 

얼마나 궁핍한 생활을 했기에

그는 공직에서 받았던 과분한 평가가 수임에 도움이 된 면도 있고 낡은 집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느 정도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안씨의 집이 어느 정도로 초라한지, 그가 얼마나 궁핍한 생활을 하는지 국민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궁색한 변명 대신 이런 사람들을 떠올렸어야 한다.

변호사의 길을 마다한 청빈한 대법관 조무제 딸깍발이는 부산지법 조정센터에서 근무하면서 급여마저 업무에 비해 수당이 많다며 절반으로 자진 삭감했다.

대법관을 물러난 뒤 후학 양성에 뜻을 두고 대학으로 간 김영란·전수안씨. 그들이 아름다운 행보를 보인 것은 전관예우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뜻에서였다.

 

공직 발탁 염두에 둔 기부인가

안씨가 사회에 환원한 47000만원 중 3억원은 세월호 참사로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후였다. 그는 세월호 사고 이후인 519일 유니세프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에게 2억원을, 국내 불우아동에 1억원을 기부했다고 인사청문회 준비단측이 밝히고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烏飛梨落)’, 어쩌면 그의 선행이 대통령의 총리 지명을 계산에 둔 것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화부정관(李下不正冠)이라 했다. 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여기서 그에게서 매관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정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427일 이후에 재산을 기부했다면 공직 발탁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기부행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안씨 측은 총리 지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누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까 싶다.

 

전관예우는 법정을 농단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부끄럽게 등장한 신조어가 해피아’, ‘관피아였다.

해수부 마피아, 관료조직의 마피아 쯤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신조어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커넥션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다. ·관의 유착 관행이 버젓이 횡행할 때 국민의 안위는 상상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배웠다.

전관예우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아니 그보다 더 위험스런 악습이다. 만민 앞에 평등해야 할 법정을 농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관이라는 이유로 그가 수임한 사건을 편파적으로 봐준다면 그 상대편에 있는 사람은 억울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여 전관예우 금지법까지 세웠지만 이번 일은 그 법적 효과가 미미했음을 방증하고 있다.

 

모든 것 진짜 다 내려 놓아야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한 안씨는 말했다.

개혁은 저부터 하겠다. 모든 것을 다 던지는 마음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

국민들은 말한다. 그런 개혁은 혼자 하시라. 국민들을 담보로 위험하기 짝이없는 총리직 수락을 하지 마시라고. 개혁은 자신 스스로 많이 하시고, 모든 것을 다 던지는 마음으로 진짜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으시라고. 그리고 국민들은 또 말한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마음은 갖되, 그 역할에 자신만이 합당하다는 과욕을 부리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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