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 기(한국교통대 교수)

지난 13일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경기로 시작되었다. 월드컵 축구는 4년마다 온 국민이 붉은 악마의 함성과 함께 즐겨야하는 축제의 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월드컵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60여일이 넘었건만 남은 12명의 실종자는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그 누구도 세월호의 아픔에서 감히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힘겹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은 예전과 같은 열기 속에서 관전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월드컵 응원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세월호 참사 이후 2개월이 지난 지금, 일부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세월호의 슬픔에만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치유하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슬픈 일이 있다고 해서 마냥 거기에만 집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슬픔을 잊기 위해서는 그 슬픔의 원인에 대해 명확히 납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세월호의 슬픔을 잊을 정도로 참사의 인과관계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여전히 12명의 실종자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고 당시 여객선 운행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이 있는 승무원에 대해서는 이제서야 법리적인 규명이 시작되고 있다. 구조에 대한 책임여부에 대해서는 해경을 포함한 그 어떤 관계기관에 대한 조사 결과도 납득이 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또한 세월호의 선주인 청해진 그룹에 대한 조사 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향후 같은 사고에 대한 재발방지와 사고 대응과정에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5월 19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부터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진행해 왔고 그에 따른 27개 후속 조치 과제를 제시했음에도 과연 정부가 약속한 6월 이내 처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정부조직 개편 작업이 재난에 대비한 컨트롤 타워를 일원화하기 위함이라는 본연의 의도와는 달리 조직 개편 안을 두고 부처별 이해관계에 따른 갑론을박만 무성할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규명되었고 대책이 무엇인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답답하기만 하다. 슬픔은 빨리 잊어야 하지만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깊은 슬픔일수록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하고 그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모름지기 잊는 것은 쉬워도 잊지 않고 항상 간직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지난 달 28일 우리나라와 튀니지와의 월드컵을 대비한 평가전에서는 의미 있는 응원전이 있었다. 붉은 악마는 당시 평가전 직전에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평가전에서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실종자의 조속한 발견을 바라는 마음으로 전반 16분간 침묵한다는 사항을 공지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였다. 희생자를 애도하는 현수막과 함께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응원을 펼쳐야만 하는 그 모습이 한결 성숙된 우리의 응원문화라고 생각하여 의미가 남달랐던 기억이 있다. 지난 11일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붉은악마 측에 평소 월드컵과 같은 응원 분위기를 이어가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월드컵 때문에 잊어서는 안된다는 당부의 말도 같이 전했다고 한다.

분명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는 예전처럼 대한민국 대표팀을 목이 터지도록 응원할 것이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간부터 광화문 일대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함성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응원전이 벌어지는 광화문 옆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우리가 가족들과 함께 가정에서 대표팀을 응원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응원할 수 없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이 있음을 잊지 말자. 대표팀을 응원하면서도 우리 국민 모두가 세월호의 희생자와 유가족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저번 튀니지 전이 16분간의 침묵이었다면 이번에는 12분간의 침묵이어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연대의식이고 의리일 것이다. 월드컵이 끝나더라도 우리는 계속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관심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