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총리 후보자로 문창극씨를 내세울 때만 해도 충북도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언론인이나, 충북출신의 총리후보자가 내정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기에 남다른 기대감 또한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감과 자긍심은 좌절감과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 후보자의 ‘부적절한’ 행적들이 하나 둘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행적들은 국민들의 상식을 벗어난, 국민들의 민감한 정서를 크게 자극하는,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큼 ‘파괴력 높은’ 것들이었다.
그는 “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분단과 6.25라는 시련을 주셨다”고 했다. 또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고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다”며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이라고 했다. 국민적 공분이 팽배해지자 문 후보자는 “(일제식민지와 6.25라는) 시련을 우리 국민들이 잘 극복해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말했다.
‘발췌론적 사고’는 ‘조작적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앞 뒤 문맥 싹뚝 자르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이어 붙이면 언술한 사람의 내용과 정반대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조작적 사고다. 독재정권하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그런 ‘표적 수사’에 당해왔다.
발췌론적 사고의 위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변명을 십분 이해하려 해도, 그의 말에는 도무지 국민적 상식으로는 납득 못할 것들로 가득차 있다.
그의 말뜻을 뒤집어 해석하면, 게으른 조선 민족을 식민 지배한 일본은 하나님이 주실 시련을 대행한 ‘정의의 사도’ 쯤 된다. 그런 민족에게 하나님은 공산화를 막기 위해 수백만명의 희생과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신다. 확대 해석하면,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백만명을 죽이고 아우스비츠에서 무고하게 유태인들 참살한 것도 ‘하나님의 역사’로 가는 ‘하나의 시련’일 뿐이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되풀이돼선 안될 참극의 아픔을 되새기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역사의 아픔을 현재진행형의 상처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잔혹한 말이요, 행위다. 이는 시각의 편향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피해자의 입장은 간과한 채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민사관적 태도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럴 바에는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한 안대희씨가 차라리 총리를 맡는 것이 백번 옳은 일이었다는 국민적 자조가 들린다.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또한 문 후보자의 언행 이후 51.1。%였던 것이 18일 41.4%까지 뚝 떨어졌다. ‘인사 시스템의 부재’를 질타하는 국민의 목소리다.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며 밀어붙이던 여당이었지만, 이제 여권 핵심부에서조차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결론은 이미 나와있다. 더 이상의 국민적 공분을 사지 말고, 잘못된 자신의 역사관과 민족관을 반성하며 사퇴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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