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애(충북대 교수)

 요새 들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너무 빈번하게 생긴다.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간신히 쓸어 덮고 나면 또 다른 사건으로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어 보여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들 한다. 과거 수 십 년 전보다 기술력과 경제가 획기적으로 발전해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 세계적으로 국위도 올라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끄러운 속보 뉴스가 너무 자주 등장해 국가 위신이 많이 떨어졌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각 지역에서 당선된 단체장이나 의원들에게 당선축하를 드리기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국민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가와 관료들이 좀 더 분발하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이제 다음 주가 되면 새로운 단체장이 취임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지방의회가 구성된다. 어느 조직에서나 기관이나 단체의 장이 바뀌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조직을 재정비하는 일일 것이다. 조직의 체제가 별로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을 바꾸는 인사(人事)가 이루어진다.
  흔히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그만큼 어느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사람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어떤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한 사람이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다면 그 인사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인재를 발굴하여 추천하는 일은 곧 추천한 사람의 얼굴이요, 자신이 평가되는 일이기도 하다.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을 추천하는 일도 매우 힘든 일 중 하나다. 취업이나 진학을 위한 추천은 해당 학생의 인생과정에 아주 중요한 일이며, 추천하는 선생에게는 학생을 위하는 마음만으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그동안 쌓아온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고, 학교의 명예를 지키는 일에 금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천해 준 학생이 잘 적응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들을 때, 가장 반갑고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 중 여러 사람으로부터 그 자리에 적합하다는 인정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어떤 자리에 오를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다면 보통 조심하지 않고 살아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개인의 입장이라면 조그만 허물도 양해될 수 있으나, 조직의 수장이 되고 국민이나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하는 위치라면 그 기준이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직위에 걸 맞는 전문성은 물론이려니와 도덕성, 공정성, 중립성 등의 공적 자격기준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 기준은 권력이나 부를 소유하지 못한 소시민에게는 일상적인 윤리에 속하는 기본일지도 모른다.  
   충북에서도 지방선거를 비롯하여 대학들의 총장 선출에 따른 새로운 기관장들이 출범하게 된다. 곧 이어 단행될 인사에서 비중 있는 자리를 기대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선자들은 후보자 시절 선거에 큰 기여를 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도 클 것이다. 임명권자가 적용한 기준과 일반 국민이나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도덕성과 공정성의 기준 사이에 차이가 너무 크다면 그를 당선시킨 구성원들의 실망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비록 일부 사회에서는 일반적 관행으로 여겨져 왔던 일이라도 국민들의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라면 심각하게 재고해 볼 일이다.   
  조선시대 청백리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정승도 대사헌 시절 뇌물을 받고, 살인용의자인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그 여성을 은닉했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반성 후 청백리의 길을 걸어 세간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극히 드문 사례이지만, 황희처럼 과오를 반성하고 바른 길을 갈 인재라는 확신만 있다면 적소(適所)에 등용할 가치가 충분한 적재(適材)가 될 수도 있다. 소중한 한 표로 우리가 선택한 당선자들이 사리에 치우치지 않고 적소에 적재를 배치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선거 캠프에서 지극정성으로 도움을 준 지지자들도 자신에게 보상적 자리가 주어지길 학수고대(鶴首苦待)하기보다 후일에 역시 그들을 선택하길 잘 했다고 평가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아량을 가지길 바란다. 그것이 진정으로 당선자를 아끼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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